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하나. 큰 무지개가 뜨는 곳 _ 02
순간 세상에 둘뿐인 기분,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
무한한 사랑을 받는
그 느낌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비행기에 탄 모녀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서로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꿈인지 생시인지 싶어서 서로 마주보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비행기 밖의 하얀 구름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 설탕이도 왔으면 좋았겠다.”
지수는 엄마의 말에 대꾸 하지 않았다.
지수의 외투 안 작은 파우치에는 조약돌이 담겨져 있었다.
어느 날 모녀 곁을 떠나서 조그만 조약돌로 되어버린 설탕이를 생각하며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설탕이는 지수와 엄마가 키우던 반려견이었다.
작은 체구에 얼굴이 크고 다리가 짧은 늘 웃는 표정의 개였다.
설탕이는 몇 달 전 산책길에서 몸에 엉킨 몸줄을 푸는 사이에 갑자기 뒹굴던 낙엽을 쫓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사고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적막한 빈 집에 웃음소리를 들리게 해준 설탕이었기에 갑자기 떠난 설탕이의 빈자리는 모녀에게 꽤 크게 느껴졌다. 설탕이 이야기를 꺼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일부러 더 즐겁게 지내려 애쓰며 산지 두 달이 가까워졌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친구가 렌트한 빨간색 오픈카를 빌린 지수는 나 팀장이 준 전복돌솥밥 무료쿠폰을 들고 식당을 찾았다. 알려진 집이라 그런지 대기하는 손님이 많아서 지수는 대기번호를 받은 다음 엄마와 바닷가를 산책했다. 에머랄드빛의 푸른 바닷가 앞에서 지수는 바다의 풍경을 핸드폰 사진으로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동영상 파노라마로 풍경을 담던 지수의 핸드폰 화면에 바다풍경이 아닌 다른 것이 나타났다. 바다 중간에 현무암이 울퉁불퉁 솟아있는 사이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듯 하다가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해녀인걸까?’
지수가 눈을 크게 뜨고 바다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엄마도 같이 바다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 저거 돌고래니? 하얀 돌고래도 있나?”
바다 멀리에서 하얀 생물체가 열심히 헤엄을 쳐가고 있었다.
무엇인지 확인하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때마침 식당에서 지수의 대기번호를 불렀다.
하얀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바다를 뒤로하고 식당을 들어섰다.
식사를 하며 식당 앞 창문으로 아까 봤던 물체가 다시 있을까 살펴봤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곧 하얀 물체의 존재는 잊혀졌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 하자 갑자기 계산대에서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계산을 하던 직원은 카운터 아래에 있는 요트투어 티켓 두 장을 꺼내어 지수모녀에게 건넸다.
“축하합니다. 5주년 기념 오늘 방문하신 100번째 손님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둘은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요트를 타기 위해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동쪽의 바다는 유난히 초록빛이었고 하늘에서부터 빛이 내려와 해안 전체를 멀리서부터 비추고 있었다.
마치 그녀들을 신비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듯 했다. 어제부터 일사천리로 여행을 오게 되고 계속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연인지 행운인지 아리송했다.
“엄마, 모든 게 행운인 걸까? 아님 우연일까?”
“그러게 말이다. 마치 섬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아.”
모녀는 들뜬 마음으로 요트를 탔다. 하얀 해군 제복을 입은 직원이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줬다.
요트에서 제공하는 와인을 마시고 즐기다 갑판에 올라섰다.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모를 만큼 온 세상이 푸르렀다. 그리고 바다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와아, 무지개다!”
“엄청 크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큰 무지개가 바다에 떠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TV에서 보던 큰 무지개가 뜨던 곳이 여기였구나!’
지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된 것, 보고 싶던 무지개를 보게 된 것은 우연한 행운이었지만 설탕이가 떠난 후 서로 힘들까봐 우울함을 티내지 못했던 두 모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촉촉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슬쩍 닦으면서 보니 무지개 끝자리가 닿는 바다 언저리에서 또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흰 물체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지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힘껏 눈을 비벼 닦았다.
지수엄마도 움직이는 그것을 보았는지 최대한 요트 끝으로 나가 살펴보다가
“세상에” 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얀 물체는 무지개 끝자리에서 바다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첨벙거리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헤엄을 치다가 갑자기 솟구쳐 올라 무지개를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중간까지 내려오다가 다이빙 하듯이 바다로 뛰어들며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바다와 한 몸이 된 듯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분명 저 멀리에 있는 무지개인데 하얀 물체는 서서히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수와 엄마는 서로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하얀 물체는 설탕이였다.
하얀 설탕이가 무지개를 타고 오르다가 다시 바다에 다이빙을 하고 헤엄을 치더니 지수모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지개를 붙잡고 바다를 딛고 있던 설탕이는 지수 모녀를 보며 꼬리를 치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설탕이의 꼬리에서 불어오는 듯 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설탕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있던 지수에게 엄마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우리 설탕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구나!”
꿈에라도 보고 싶은 설탕이는 무지개 아래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3편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