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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환기

이기대의 숨결 #160925

by YEXI Mar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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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도는 잡다한 것들을 뒤로 하고 운동화를 신는다. 간만에 맞는 햇살을 만끽하며 상쾌한 기분에 취해 본다. 온 세상을 감싸는 따듯한 색의 빛이 괜스레 예뻐 보이고, 발걸음은 허공을 디디는 듯 가볍기만 하다. 바람에 날려 간지러운 머리카락마저도 기분 좋은 오늘은 나를 위해 마련한 특별한 휴일이다.



[잠시 머무는 부산, 04]






신선대 산복로를 따라 이기대 도시자연 공원까지 쭈욱 걷는다. 예상보다 훨씬 길게 뻗어있는 길을 느긋한 걸음으로 좇다 보면, 복잡하게 괴롭히던 생각들이 낮 햇볕에 하나 둘 연소되어 간다. 당장 아무도 나를 쪼아대지 않더라도, 억압에 익숙해 진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 잔뜩 긴장해 움츠린 채 보내왔던 하루하루였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탁 트인 바깥에서 유동하는 공기를 느끼며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니. 


이만큼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고작 이만큼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문이 들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냥 마음껏 지금의 좋음을 누리기로. 





끝도 없는 고민의 굴레에서 가끔 지친 몸을 질질 끌고 나올 수 있다면, 가쁜 숨을 몰더라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짙은 하늘을 보며 환기시킬 수 있다면, 온통 각진 방에서 뛰쳐나와 찬바람을 쐬며 굳은 몸 한 번씩 스트레칭 해줄 수 있다면 

그냥 그걸로 나는 됐다고.


사람 사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며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지금의 청량을 위해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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