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의 숨결 #160925
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도는 잡다한 것들을 뒤로 하고 운동화를 신는다. 간만에 맞는 햇살을 만끽하며 상쾌한 기분에 취해 본다. 온 세상을 감싸는 따듯한 색의 빛이 괜스레 예뻐 보이고, 발걸음은 허공을 디디는 듯 가볍기만 하다. 바람에 날려 간지러운 머리카락마저도 기분 좋은 오늘은 나를 위해 마련한 특별한 휴일이다.
신선대 산복로를 따라 이기대 도시자연 공원까지 쭈욱 걷는다. 예상보다 훨씬 길게 뻗어있는 길을 느긋한 걸음으로 좇다 보면, 복잡하게 괴롭히던 생각들이 낮 햇볕에 하나 둘 연소되어 간다. 당장 아무도 나를 쪼아대지 않더라도, 억압에 익숙해 진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 잔뜩 긴장해 움츠린 채 보내왔던 하루하루였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탁 트인 바깥에서 유동하는 공기를 느끼며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니.
이만큼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고작 이만큼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문이 들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냥 마음껏 지금의 좋음을 누리기로.
끝도 없는 고민의 굴레에서 가끔 지친 몸을 질질 끌고 나올 수 있다면, 가쁜 숨을 몰더라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짙은 하늘을 보며 환기시킬 수 있다면, 온통 각진 방에서 뛰쳐나와 찬바람을 쐬며 굳은 몸 한 번씩 스트레칭 해줄 수 있다면
그냥 그걸로 나는 됐다고.
사람 사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며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지금의 청량을 위해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