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처음이라
그렇게 계획하던 몬트리올 워홀이 시작됐다. 인천-토론토-몬트리올의 장장 (13시간-5시간 대기- 1시간 10분) 총 16시간 10분의 비행은 나를 좀비로 만들어버렸다. 시차도 다를뿐더러 출국 전날 짐을 싸고 집정리를 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 인천-토론토 비행에서는 갓난아기들의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 덕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토론토에 도착해서는 긴장한 상태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다시 찾았다 붙여야 해 많은 체력이 소진되었다.
워크퍼밋의 경우, 몬트리올이 아닌 토론토에서 받게 된다. 캐나다는 처음인지라 모든 게 새롭고 낯설어 긴장을 많이 한 상태였다. 그렇게 초긴장 상태에서 이미그레이션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한 아이와 손잡고 다가오시는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토론토에 도착하면 키오스크에서 간단하게 캐나다에 온 목적을 클릭하고 영수증같은 종이를 받아야한다. 나는 미리 정보를 찾아놓고 와서 수월했는데 한국 아주머니께서는 그 부분을 모르고 계셨던 것이다. 영어도 쉽지 않으셔서 가장 한국인처럼 보이는 내게 도움을 구하러 오신 것이다. 나도 캐나다는 처음이지만 이것저것 눌러가며 도와드렸고 각자 입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그때는 생각 못했는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아주머니의 용기가 참 대단하신 것 같다. 젊은 우리들도 낯선땅을 밟는게 쉽지 않은데 언어도 안되고, 홀몸도 아닌 아이를 데리고 낯선땅을 밟았다는 것 자체로 박수받을 만하다.
그렇게 키오스크에서 영수증을 가지고 직원에게 이미그레이션에서 워크퍼밋을 받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받아 버렸다. 질문도 거의 없이 "캐나다에는 왜 왔니?"라고 방문목적만 물어봤고 나는 그저 "워킹홀리데이로 왔어" 대답만 했다. 그리고는 혼자 열심히 서류 확인을 하더니 워크퍼밋 비자 종이를 가져왔다. "1년 동안 캐나다 지역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대신 공부는 하면 안 돼"라고 당부의 말을 들으며 이미그레이션을 아주 스무스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려면 SIN넘버가 필요한데 토론토 이미그레이션을 빠져나오면 짐 찾는 곳 가까이 오피스 하나가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여기가 열려있으면 이곳에서 받는 게 제일 좋지만 내가 도착했을 당시에는 닫혀있어 결국 나중에 SIN넘버를 받으러 가야 했다. (이건 나중에 다른 편에서 다루기로) 그렇게 토론토 공항을 빠져나와서 몬트리올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느낀 것은 몬트리올행 게이트 앞에는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불어의 장벽이 힘든 것인가?' 한국에서 토론토로 올 때는 한국인들을 꽤 많이 봤는데 대부분 토론토가 최종목적지인 듯했다. 현실을 마주하니 걱정도 되면서 약간의 자부심도 생겼다. 남들이 가기 두려워하는 곳을 내가 워홀 목적지로 결정했다니...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 웨스트젯 비행기를 타고 몬트리올로 향했다.
1시간 10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몬트리올 공항에 도착하니 반기는 건 프랑스어! "Bienvenu" 한국말로는 환영한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프랑스어를 보니 신나기도 하면서 피로에 쩌들어 얼른 숙소에 도착하고 싶었다. 몬트리올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는데 생각보다 공항이 아담했다. 한 2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짐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고, 슬슬 우버를 부를 준비를 했다. 우버는 한국에서 미리 설치해 와서 큰 문제없이 기사를 부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민가방과 캐리어 총 4개의 짐이 있었기 때문에 Uber XL, 큰 차를 불렀고 밴이 도착했다.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카트가 경사진 곳에 있어서 우버차에 그대로 들이 박을 뻔 사건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의 초인적인 순발력으로 막았다. 임시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집으로 공항에서는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었다. 사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곳 몬트리올도 퇴근시간에는 차가 엄청 막히기 때문에 예상 도착시간보다 지체됐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말해준 주소에 도착하고 짐을 내렸는데 나는 당황스러웠다. 3층짜리 하우스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이 계단으로 짐을 옮겨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하던 찰나 집주인이 나와서 짐 옮겨주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하나둘씩 짐을 옮기는데 밖에 지나가는 행인이 내가 끙끙 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을 보더니 와서는 "내가 도와줄까?"라고 불어로 물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 어 너 시간 되면 좀 도와줄래?"라고 대답을 해버렸고 그렇게 그 청년은 나와 함께 이민가방을 3층까지 올려다 줬다. 도와주고 나서 내가 그 청년에게 "너무 고마워!!!"라고 감사인사를 하자 "아냐, 널 도와줄 수 있어서 기뻐!"라고 스위트한 멘트와 함께 갈길을 갔다.
몬트리올까지 오는 길이 멀기도 험했지만 한 청년의 따뜻한 멘트와 도움 덕분에 몬트리올의 첫인상이 나에게는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