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숙자는 양반이었다
캐나다는 이민자들의 나라이기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살아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길거리에 비키니를 입고 다니든,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든 그것에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지하철만 타봐도 인도계, 스페인계, 아프리카 쪽 사람들로 가득 차 영어보다는 불어와 다양한 언어들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좋은 점은 나 또한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점이다. 내가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오로지 나의 취향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을 쉽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저 사람이 무엇을 입고 다니든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취향이니까. 하지만 단점도 물론 있다. 그만큼 개개인에게 신경을 안 쓰다 보니 약에 취한 홈리스가 다가와 소리를 지른다 해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캐나다 몬트리올을 오기 전 현재 캐나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블로그와 브이로그를 찾아보곤 했다. 내가 생각했던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캐나다의 모습보다는 마약에 쩌든 홈리스들이 도로에 즐비하다는 글이나 이야기를 접했다. 미국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막상 캐나다에 와보니 생각보다 많은 홈리스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역 주변에는 꼭 홈리스들이 몰려있기 마련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동전을 구걸하는 홈리스가 있는가 하면 마약에 취해 구석에 가만히 혼자 중얼거리며 있는 홈리스도 있다. 화가 많이 나있는 홈리스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도 한다. 대마초가 합법화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맡기 힘든 대마초 냄새를 간접적으로 맡아야 한다.
한국에서 쭉 살아갔다면 쉽게 접하지 못한 풍경과 경험들이다. 대부분의 한국 노숙자들은 서울역이나 역사 주변에 신문지와 종이박스로 자신의 구역에서 있는다. 노숙자들이 시민에게 위협되는 행동을 한다면 경찰들이 제지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반 지역에서는 그들을 쉽게 만날 일이 없다. 하지만 캐나다는 다르다. 마약에 취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이게 해도 상해를 입히지 않는 한 경찰들의 제지는 없다. 특히 몬트리올에는 아시아인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적은 인원이 살아가기 때문에 쉽게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약에 취한 홈리스 한 명이 내쪽으로 걸어왔다. 아무도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혼자 고래고래 소리 지며 우리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최대한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기 위해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혼자 아시아인인 게 타깃이 되었다. 내 앞까지 와서는 삿대질을 해가며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자세히 들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너 아시아인인 주제에 여기서 얼마나 번다고 그래?"
물론 이 문장 중간중간 욕설도 섞여있었다. 그 사람의 말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 내가 일을 하면 산다는 게 불만이셨나 보다. 처음 겪는 일이라 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저 최대한 말을 아끼며 그 사람이 다른 곳을 갈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그날 하루종일 불쾌한 감정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내가 왜 타깃이 돼서 욕을 먹어야 하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험난한 일들이 있을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오고 나서 처음으로 후회한 날이었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라 모든 인종을 포용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홈리스가 나에게 욕하며 소리 지른 건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1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나다를 그저 아름다운 자연과 공존하는 친절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이방인으로서 타지에서 살아가려면 내가 스스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강철멘탈이 필요하다.
몬트리올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더 많은 아시안이 살고 있는 밴쿠버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캐나다 워홀 하면 밴쿠버나 토론토를 떠올린다. 나 또한 더 큰 도시인 밴쿠버에 가면 더 살만할까 고민한 적이 있다. 아시아인들이 몬트리올보다 밴쿠버나 토론토에 훨씬 많기 때문에 아시아인 차별도 덜할 것이고 인프라가 다 갖춰있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더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밴쿠버에서 며칠을 있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몬트리올에서 봐왔던 홈리스들은 밴쿠버에 더 많았고 마약에 쩌든 사람들도 훨씬 많았다. 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펜타닐과 같은 마약에 쩌든 좀비들도 밴쿠버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무리를 지어 한 거리에 모여있었다. 나는 구글맵이 가라는대로 지나갔던 거리지만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 최대로 긴장하면서 걸었던 거리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밴쿠버에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장을 보러 나왔는데 너무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나름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그 앞에 노숙자가 싸놓은 똥이 있었다. 개똥은 많이 봤는데 사람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2차로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앞에 한 여성 홈리스가 있었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성에게 다가가 피고 있는 담배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자신의 다리에 보라색 볼펜으로 꽃을 가득 그려놓곤 길거리를 배회하는 홈리스였다. 약에 취했는지 남이 피던 담배를 들고는 반대편 거리로 가 다시 볼펜으로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차마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마약이란 게 한 사람의 삶을 이토록 망가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날이었다.
나름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와서 예상치 못한 것을 목격하고 경험할 때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나의 포용력은 그렇지 못했다. 밴쿠버 다운타운은 나에게 충격의 도가니었고 몬트리올 홈리스가 더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밴쿠버 여행을 하는 동안 길거리에서 정말 다양한 홈리스들을 많이 만났다. 온갖 재활용품을 이고 지고 한 곳에 자리 잡아 누워있는 홈리스들도 많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건 마약에 찌들어 몽롱한 상태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바지가 반쯤 벗겨진 채 걸어 다니는 홈리스들이었다. 자신 스스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약기운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내가 앞으로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캐나다에 살아보면서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계기가 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마약과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문제도 캐나다에서 살아보니 더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캐나다의 삶을 그저 아메리칸드림처럼 이상적인 모습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이곳을 오게 된다면 실망하는 모습들이 많을 수 있으니 강철멘털을 준비하고 이 땅을 밟길 추천한다.
처음 내가 꿈꿨던 캐나다의 삶이 아닐지라도 살다보면 또 살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