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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05. 2024

우리 둘만의 시시한 그런 이야기

나의 세계

3개월 단기로 일하는 일터에서의 일이 끝나간다.

이곳에서 나는 세 번의 회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그 누구와도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 첫 미팅자리에서 차를 마신 기억을

빼면 단 한 사람과도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내에서

서로 눈인사는 하고 지냈다. 처음 일주일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뭐랄까 꿈이 있다고 해야 되나.  그런 설렘 때문에 일터라는

느낌이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그런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 포지션을 정확히 잡았다. 정들면 그만 두지도 못하고

발목이 잡히고 만다.  조건과 패이가 맞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 알수없는 분위기가 좋아 한달이 석달이 되버렸다.


이곳에는 슬프게도 꿈과 열정이 있다.  하지만 통장잔고는 언젠가는 바닥이 나고 말것이다.

정이라는 감정이 얽매여 일을 하게 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그래서 붙박이처럼 앉아서 일만 하면서 특별한 미팅 외에는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보인다.

공적인 만남에서의 이별은 어쩌면 이렇게도 쉽다. 아무런 아쉬움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의 이별은 언제나 힘들다. 특히나 남녀가 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말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아는 사람이든. 그 어떤 포지션에도 속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관계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서로의 속마음을 모르는 애매모호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측가능하지 않은 관계는 서로의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또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과 거리가 유지된다.


상대의  애매모호함을 견디면서 관계를 유지해야 할 때, 설렘과. 즐거움만큼

뭔가 자꾸 조급 함이 들고 편안해지지 않을 때

일상이 그 관계 때문에 메이게 되고, 내 시간이 줄어들고,  나를 흔들어 놓을 때면

문득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관계를 당장 끝내야 하나?  아니면 서서히 멀어지게 해야 하나?


딱히 설명되지 않는 이관계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뺏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에너지라는 게  때로는 활력이 되고, 긴장감이 되고 몰입이 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충분히 견디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그냥 이대로 두자 어디로 갈지 그건 이관계가 정해서 알아서 가겠지.

난 그냥 인연이라는 끈에 날 묶어놓고, 그 줄에 움직이는 헝겊인형처럼 움직일 거야.

내가 이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새로운 사람을 마음으로 들일 때 그 사람과 첫 대화를 하기 시작할 때

나는 첫 만남에서 마음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무언가 같이 할 것이 많은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


어렸을 때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만이 있었다.  기껏해야 내 세울 수 있는 게..

집에 전화기가 있다는 둥, 피아노가 있다는 둥 그런 게 내세울것의 전부였던 시절.

친구를 사귈 때 우리는 앞으로의 함께 만들어갈 세계만을 꿈꾼다.


둘이 함께 같이 무언가를 하는 그런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주변의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고민상담을 하고, 그렇게 촘촘하게 관계 속으로 둘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들로 꽉 채워 나간다.


내가 과거에 어떤 걸 했으며 내가 과거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나의 위치가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조차도 없다.  친구와 나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완전히 변한다.

친구라는 프레임 안에서도 이해관계를 따지고, 둘이 만들어나가는 세계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를 가지고 와서 되새김 질을 하고, 둘만의 세계를 공유하기보다는

외부의 것들을 가져와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고,  상대의 생각이나

가치관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포장하기 바쁘다.

출생학교, 사는 도시, 직업, 아파트평수만 알고 나면 이미 반쯤 그 사람의 정체성까지 다

파악해 버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궁금해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유를 나누는 게 아니라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싶어 한다.

내가 무얼 해 봐서 아는데... 내가 거기 가봐서 아는데... 내가 그 사람을 건너 건너서 좀 아는데...

그리고 온통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알고 싶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은 그런 가십거리에 환호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1도 표현하지 않고, 귀여운척하면서, 추앙하고,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 주변에는  자신을 표현하고 내세우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을 빛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이 말속에는  사람들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보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어긋나는 관계도 보인다.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어떤 자기다움으로

살아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온 적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의 인생에서 아니 서로의 대화에서 상처받거나, 외로워진다.

나이가 들면 함께 무언가를 새롭게 하고 싶어 하기보다는 과거의 추억들을 나누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내려놓아야 할 것 투성이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이 두렵다.


우리는 딱히 이별할 용기도 업고, 이별할 마음도 없으면서 이별을 생각하는 이유는 왜일까?

앞으로의 새로움을 끌어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계를 맺어나갈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너와 내가 만나 무엇을 함께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두려운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서로 함께할 두 사람만의 세계가 아니라 과거의 관계 속 시행착오만이 선명하다.


초등학고 내내 나의 단짝친구는 동네에 사는 여학생 정순이었다. 그 애와 난 학교가 끝나면 언제나

들러서 오는 골목이 있었다. 하얀 지붕이 이쁜 부잣집 큰 대문 앞에 앉아서, 이 멋진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하얀 지붕을 지나쳐 모퉁이를 돌아서면 문방구가 나오고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나온다. 그러면 또 그 집 앞에서 한참을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 집할머니가 가끔씩 지나가는 우리에게 술떡을 주곤 했는데... 가끔은 오늘도 운이 좋으면 술떡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과 함께 이 미스터리한 집에 사는 할머니에 대해  

우리는 또 긴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왜 이 작은 판잣집에서 혼자 사는 것일까?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우리 둘에게 그 이야기들은 중요한 우리들만의 세계였다. 우리 둘만의 느낄 수 있는 그 세계 속에서는

지루함이란 없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오면 둘만의 세계로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아직도 그런 시시하지만 우리들만의 그런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꾼다.

지금 만나는 이사람이 그런 특별한 사람인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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