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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11. 2024

내 침묵을 이해해 주는 사람.

진심


때로는 침묵해야만 많은 이야기를 전할 때가 있다.  이야기보다 더 깊은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침묵은 나의 기특한 대변자이다.


행여 나의 침묵으로 상처받지는 않을까? 나는 상대가 그런 걱정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서 좋다.

내 침묵에 대한 답을 같은 침묵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

언어가 사람마음에 닿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내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할 때 말은

내 진심을 왜곡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만들어, 물꼬를 터 버리고

주워 담지 못할 때도 있다.


내 침묵이 거부도 아니고, 거절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며, 노여움도 아니고, 섭섭함도

아니며, 단지  조금은 긴 시간의 약속 같은 마음이라는 아리송한 답을 내놓지만

이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침묵의 끝은 결국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흥미진진 한것이다.


7년전 현실에서의 관계에서 소외된 시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sns라는 새로운 세계를

처음 만났다. 이곳에서 나는 전혀 뜻밖의 나를 만났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들과 많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도 있었고,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손가락질도 받을 수 있게 할 수도 있었다. 전혀 다른 모습의 나로 새롭게 변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아이덴티티 또한 한 꺼풀씩 벗겨지기도 했다.

 현실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을 쓰고, 현실에서 만날 수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에서, 접하지 않은 이야기들에 진지하게 대화하고,

현실에서 웃을 수없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는다.


그리고, 7년째 접어드니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온라인에서의 나는 스스로를 관심종자로 만들

뿐이다. 중독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또다시 중독의 늪으로 빠지고 만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갔다가  또다시 짜릿한 도파민이 분비되는 걸 느끼고, 기대만큼

반응이 없거나, 무관심하면, 무언가 또 노력을 하려는 마음이 올라와서, 나답지 않은 허구의

나를 창조해 내곤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지만 이것은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다.


마치 연예인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어 대중에게서 사랑받으려는 욕망과도 같다.


현실에서의 나로 돌아오면 밋밋하고 지질한 관계를 버티어야 한다.

매일 보는 지인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늘 똑같은 대화들에 지지고 볶는

작은 이익 앞에서 서로 눈치 보다가 티격태격하면서 또 서로 마음을 들키고,

못났다 못났다. 하면서 또 웃고, 화해하고, 매일

이런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럴 때면 또다시 온라인이 그리워진다.


낭만이 있고, 유머가 있고, 문학이 있고, 새롭게 인식하는 자아가 있고,  나를 반기는 누군가가 있고,

하지만 이런 사이버 세계에 없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침묵하는 나이다.

온라인에서 침묵하는 나는

없는 존재이지만

현실에서 침묵하는 나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내가 친구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생생한 라이브의 현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공유할만한 이런 침묵의 시간이 주는

메시지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우리는 정말 지질한 모습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한다.

온라인에서 글로써 싸우고, 화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들이다.


숨소리를 듣고, 한숨을 느끼면서 서로를 조금은 알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침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서로를 경험해 보지 않고, 그 사람을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서로의 밑바닥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을 안다고도 할 수 없다.  비록 한 사람과 험한 꼴을 보고

헤어졌다고 하더라고, 나를 성장시킨 사람들은

바로 한때 뜨겁게 나와 인연의 터널을 지나왔던 그 사람들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다는 사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하나의 관계가 끝나면 바로 내가 남는다는 사실은 언제나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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