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May 15. 2024

오늘을 기억해 주세요

만남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어젯밤  그 식당에 두고 온 게 분명하다.  아니면 건물 화장실인데.. 

오늘 찾으러 가야겠다.

정신이 마실을 나갈 만큼 집중해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느라 기분이 업되고,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충만해진 나를   챙겨서 식당을  나왔다. 핸드폰 하나쯤은

남겨두고 와도 괜찮았다.   그래야 또 나답다.


나와 인연을 다한 거면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됐나 보다. 

아침에 아무런 미련이 없이 홀가분한 이상한 감정을 만난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때 아무 생각 없이 약속장소로 간다. 약속을 잡기 까지가 힘들지 

일단 만나면, 그저 시간 속에 나를 풀어놓고, 어떻게 놀지는 그날의 서로의 이야기가 만나서 결정된다.


우리 둘은 어제 처음 만나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었을까?  서로 미소가 오가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귀를 한껏 쫑긋 열어젖혔지만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도 않았다. 우리가 함께 앉아 있다는

감격과, 함께 시간을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정해진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때  잠시 고개를 숙인 어깨가 흔들리고,

붉어진 귓불에서부터 타고 내린 눈물줄기가  얼굴을 감싸 안은  두 손에서 멈추었을 때

우리의 시간은 멈추었다.  시끄러운 소음은 잠시 눈물을 정지시켰다.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빌려 주고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눈물이 넘쳐야 하는 시간은 어쩌면  혼자만의

여운이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누가 있어, 혼자 식당에서 울어 보겠는가!

그 무수한 시간 나도 그렇게 눈앞에 벗을 마주하고, 울었던 시간이 있었다.

" 당신도 내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군요...." 못내 원망스럽고, 서러워서 울었지만

사실은 그 원망조차 편하게 할 수 있을 사람이 필요했는지 몰랐다.

함께 온 사람을 병풍 삼아 긴 시간을 울어 본 시간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설움에 울부짖는 나를 밖으로 꺼내서 만나는 시간이었다.


잠시 창문너머로 밤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웃으면서 지나치는 사람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오늘밤 그들은 잠시 슬픔을 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나의 슬픔을 만난다.

나는 아무런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서 혼잣말을 했다.


  지금 당신은 내 앞에 앉아 잠시 복받쳐 오는

자신을 만나서 마음을 툭 놓아버리고, 있군요.  이렇게 계속 당신 안에서 며칠간 웅크리고 있던

열일곱 살의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툭하고, 마음이 터져버린 둑처럼

눈물이 새어 나왔나 봅니다.     당신을 무장해제 시켜 당신의 손을 잡은 그 아이는 오늘밤

당신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우리의 시간 속으로 들어와 있나 봅니다.


당신이 일상에 지쳐 미처 귀담아듣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당신이 미래를 담보해서 이루지 못한 그 어떤 일에 더 공허감을 느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해서 당신의 감각이 되어 나와 만나려고 당신 밖으로 툭 튀어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이렇게  깊은 내면에서 아무것에도 시선이 가지 않고, 당신을 집중하며

당신의 내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사실 당신보다 어쩌면 내가 더 힘든지 몰라요.... 

당신이 날 위해 대신 울어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시간 속에  있었다.

지금 내 마음이 힘들 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앞에 말없이 내 눈물을 무심히 아무렇지 않게 여겨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슬픔과 함께, 나의 시간을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뜻하지 않은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사건을 뛰어넘고, 경험을 뛰어넘고, 감각을 뛰어넘는

그런 순간의 나를 만난다.   내 안의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말이다.

당신의 슬픔을 나는 감히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당신은 자신과 만나고 있다는 걸  압니다.

나는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내가 몰입해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도 

당신 자신이 만나고 있는 그런 또 다른 당신에게 들려주려고 나의 또 다른 내가 당신에게

하고 있는 그런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오늘 아침 

어제의 두려움과 불안, 허무가, 아침에 눈뜬순간  더 커지고, 더 허무함이 밀려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제 나눈 이야기처럼  그 감정 또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안정이 됐다면 그것은 아마  어제 우리가 만났던

새로운 자아 덕분일 겁니다.  우리는 어제 처음 만나 새로운 자아들을 만들었습니다.

인연이란 이렇게 새로운 인격의 탄생을 예고하는 거겠죠. 서로에게 길들여질 때

그때의 자아들은 감동하고, 성숙하고, 배우고, 받아들이고, 단단해져 갈 것입니다.

먼 훗날 이런 이야기를 하겠죠. 그때 난 그날 그 만남이  참 좋았었다라고요.

그때 난 당신에게 공명하고, 고마워하고, 설레어하고, 신기해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한 그런

어린아이 같은 시간을 만났습니다.


그 자아 덕분에,  과거의 나를 조금은 토닥거려 주고, 위로해 주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할 겁니다.  당신이 나의 시간 속으로 초대해 주어서 잠깐 당신과의 시간 속에 머물렀던 시간을

현실 속에 데려 올 수 있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정말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거겠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나라는 존재가 잊혀도 당신 안에서는 나로 인해 만들어진

아이가 살고 있을 겁니다. 딱 한 번만 만났다고 해도 잊지 않고, 당신의 현실 속에서

살아있다면, 당신은 당신 안에 오랜 친구를 하나 가진 셈이 됩니다. 당신은 혼자 있는 시간에도

이 친구와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당신이 이런 능력을 만들어 혼자 있는 시간 당신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무수한 과거의 친구들과도 함께 조우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도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흘린 눈물을 보지 못했지만. 나 대신 흘려준 눈물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