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un 14. 2024

막말대가의 남편과 사는   국밥집 미순씨

순대국밥

우리 동네 시장골목길 순대 국밥집 미순 씨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자존감이 높은 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는 사람들을 대할 때 편견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사람을 대할 때 바라보는 눈빛은 항상 맑고 투명하다.

그 어떤 진상 손님이 와도, 싫은 내색 없이 똑같이 대한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감정이 거세된 사람인 줄로 알았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남자와 결혼했다.

50 초반에 들어선 그녀와 남편의 나이차이는 10살 그녀의 남편 박 씨 아저씨는 성실하고, 우직한 남자지만

막말의 대가이다. 동네 시장 사람들 모두 박 씨 아저씨의 막말에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야채 가게 아줌마는 맞은편 순대국밥집 박 씨 아저씨얘기를 꺼내면

" 나는 하루도 저런 남자와 못살아요. 부부가 같이 붙어서 일하는데, 박 씨 아저씨는 진짜

마누라를 이 잡듯이 잠시도 가만히 두질 않아요. 와 어떻게 저런 남자랑

20년을 같이 장사를 해요. 세상에 보살이 따로 없어요."



순대가 없는 순대국밥집 순대국밥 국물이 아주 담백해서

동네에서 혼자서도 자주 가는 단골집이다.

가끔은 2인분을 포장해서 오면 이틀을 거뜬히 먹을 때도 있다.



" 야 야 저기 테이블부터 먼저 닦아야지... 여자가 어째 그래 일머리가 없니? 맨날 하는 일인데..

딱딱 어디가 먼저인지 그게 그래 감이 안 오나? 세 살 먹은 애들도 이래 잔소리하면 알아듣을 건데..

머리는 무늬로 달고 다니나 여편네야?"



처음 이 집에서 혼자서 국밥을 먹다가. 이 부부의 대화를 듣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수저를 집어 던질

뻔 했다.

홀 안에 손님도 제법 있는데.... 아저씨는 막말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근데 이 박씨 아저씨의 막말 퍼레이드를 눈살 찌푸리지 않게 만드는 광경으로 만드는 건 바로

미순 씨의 대응이었다. 나는 그날 미순 씨의 이 말을 듣고 나서 미순 씨를 사랑하게 되었다.



" 당신 그 말 안 하면 죽재? 나는 과부 안되고 싶다. 당신이 떠들어 대는 거 동네 소음보다

조금 더 시끄럽다. 우짜겠니, 나라도 들어주어야지."



미순씨의 얼굴에는 화가 하나도 없었다. 마알간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순 씨가 바보인 줄로만 알았다. 독설가 남편의 말을 참고 사는 속이 문드러진 여자쯤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국밥이 담백하고, 깔끔해서 단골이 되고 나서부터 미순 씨의 답답하던 모습이 황홀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저 인간이 처음부터 저렇게 말이 거칠어진 건 아니었어요. 사는 게 힘들어지고, 어디 풀 데도 없고,

내가 오냐오냐 받아주니까 점점 말이 험해진 거죠. 다 내 탓이기도 해요. 하지만

싸움도 많이 했어요. 근데 사람 안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 인간 말하는 습관이고 저 인간 언어이니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 거지... 저 인간이 악의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거든요.

저인 간은 법 없이도 살만큼 선한 사람이에요. 근데. 말하는 법이 조금 다른 뿐이죠."



미순 씨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있으면, 부부라는 단어에 가끔은 새로운 밑줄을 긋고 빨간 글씨로

많은 부연설명을 하고 쓰고 싶어 진다.



부부란 둘만의 대화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서로를 겨누는 창이라고 해도, 둘만의 창과 방패가 서로를

보호한다면 얼마든지 함께 살 수 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수용이라고 하더라도...



미순 씨는 그래서 가끔은 혼밥 하는 나의 밥상 앞에 앉아서 말동부 삼아 깨달음 같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 남편한테 이쁘다 사랑스럽다 네가 최고다 그런 말 들어 본 지가 기억도 안 나요.

근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성숙된 관계란, 그런 말 하나 없이도, 잘 사는 관계예요.

난 저 인간이 살가운 말 하나도 안 해줘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 인사치레 립서비스는 밖에서 얼마든지 듣잖아요.

근데. 집에서까지 안 들어도 돼요. 남편이 하는 잔소리가 뭐 더 날 생각해 주는 말 같을 때도 있고요.

받아들이기 나름이에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 내가 알면, 오히려 신랑이 하는 잔소리가

더 정겹게 들리기도 해요. "



미순 씨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자신을 합리와 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저 신포도는 실 거야 시어서 못 먹는 거야 그러니까. 먹지 말아야 해라고 세뇌시키듯이

스스로에게 남편의 폭언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언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뭔 대수인가.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만들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말에 설득당하고 있었다.



긍정의 언어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이쁘게 포장되어 있지만 세상의 모든 갑들은 을들에게

긍정의 언어를 강요한다. 우리가 받는 임금 중에는 더럽고 치사해도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안되고 긍정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긍정의 언어를 세련되게 잘 쓰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긍정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든다.



긍정의 언어를 강박적으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적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긍정이란 말을 잘못 받아들이면 긍정의 덧에 갇히고 만다.

긍정이란 단어를 떠 울릴 때 또한 사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는 자신의 비극적 삶이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남편과의 스토리를

가감 없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댓글로

많은 독자들이 그녀 편을 들며 남편을 욕하고

그녀를 공감해 주었다. 그녀는 그런 공감의 댓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환자였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내편이 필요했고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4년간 글을 쓰면서 아직도 여전히

남편에 대한 원망의 글을 쓰고 있다.

이제쯤 원망의 글을 내려놓을 때도 됐을 텐데 그녀는 아직도 쓸 말이 많았다.



처음에는 짠한 마음에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까 하며


같이 분노했다.



그러다가 참 잔인한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이러니까 병이 낫지를 않고 점점 더 심해지지

결국 자기 병은 자기가 만드는 거야"




이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인데

아주 잠깐 갑자기 냉혹한 인간처럼 느껴졌었다.



그녀는 남편을 욕하면서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녀의 글쓰기가 자신의 응어리를 풀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제는 그 부정적 마음을 긍정으로 풀어내는 해법이 필요하다.



남편의 폭언을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법으로

풀어내서,,,, 점점 더 진화해 가는 순대국밥집 미순 씨가


자존감이 높은 이유는 그 어떤 얘기도 미순 씨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글을 쓸까?



때로는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었느냐?

아니다, 내 문제는 자신이 너무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부정적인걸 보지 않으려 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긍정적인 사람의 약함은

인생에 있어 힘든 순간이 오면 너무 긍정에 집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때 가장 큰 재앙은

자신을 긍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일어난다.

그때가 되면 타인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이 분노와. 적개심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을 긍정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긍정의 민낯은 부정적인걸 해석하는 능력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어떤 노력이나 애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 없이

나를 감싸기 위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것은 결국 부정이 되어 버린다


.

말과 생각에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긍정을 일으키는 시작은 되지만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자칫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기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실천 없는 사고는 습관처럼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살자!'라며 외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정작 그 의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긍정이 아닌 부정을 위한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순대국밥집 미순 씨는 남편의 폭언에 저항하고 싸우는 대신

다름이라는 언어로 받아들이는 법을 선택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남편의 언어로 성숙해져 간다는 표현을

한다.



이런 미순 씨가 해주는 순대국밥이 어찌 맛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