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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Sep 19. 2024

낭만 19 ξ 맡겨지는 것들

오늘 하루도 잘 가지고 있었다

“이거 잘 가지고 있어야 돼.”


등원 길에 아이들이 들고나가는 물건은 참 다양하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산을 챙기거나, 종이 부스러기를 쥐고 나갔다가 애지중지하며 건네주기도 했다. 덕분에 홀로 집으로 돌아오며 남은 사탕을 먹기도 하고, 휴지에 실을 꿰어 만든 연을 날리기도 한다. 킥보드를 되가져오는 날엔 타기도 한다.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뚜껑 손잡이가 딸랑거리는 비눗방울을 쥐고 돌아오던 날은, 걸음마다 딸랑딸랑딸랑 소리가 울렸다.


이왕이면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것들이면 좋겠는데,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늘 가벼운 손을 좋아했다. 무언갈 쥐고 걷는 건 긴장되고 불편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손이 비는 걸 가만두지 않는다. ‘쥐고 다니는 것도 좀 해보세요’ 하는 듯이. 

    

오늘은 풍선이다. 아침부터 풍선을 들고 걷는다. 아이들과 함께일 땐 자연스러웠던 것이 혼자 하니 좀 어색하다. 이런 풍선을 원해서 쥐고 다녔던 때가 언제였을까.


풍선을 보니 기분이 둥실거리고 가벼워진다. 내친김에 집을 지나쳐 안 가본 골목 틈을 꼼꼼히 거닌다. 그러다 보니 넓은 운동장이 나오고, 바람에 펄럭이는 담쟁이넝쿨과 물고기 모양 다리를 만난다. 바로 옆 초등학교의 열린 창문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리코더 부는 소리도 듣는다. 리코더 구멍을 막던 손가락을 떠올리며 내 손끝을 마주 대본다. 여러 명이 합주하는 리코더 소리 위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얇게 스며든다. 내가 겪었던, 내 아이들이 겪을, 그래서 나도 다시 겪게 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걸어가는 곳마다 새소리가 따라붙었고, 골목은 촘촘히 이어져 다시 아는 길로 데려다줬다. 익숙한 길을 걷다가 철물점 앞을 지난다. 가게 전면을 꽉 채울 만큼 많은 도어 록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 집을 지키고 있는 것과 닮은 걸 찾아본다. 이렇게 생겼던가. 늘 보던 건데도 헷갈린다.

야채 가게를 지나 사거리에 도착하니 집이 보인다. 도어 록에게 맡겨둔 집을 찾으러 가야겠다. 바빠진 걸음에 달랑대는 풍선이 마주 오는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신이 맡겨둔 풍선과 닮았는지 나를 지나치고도 뒤돌아본다. 풍선을 더 꼭 쥔다.     


드디어 집 앞에 도착해 도어 록을 마주한다. 새삼스레 훑어보며 물었다.


“우리 집, 잘 지키고 있었어?”


안으로 들어가니 귀는 고요하고, 눈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급히 나간 아침의 흔적이 그대로다. 손을 씻고 나오며 바닥에 떨어진 풍선을 본다.     


“엄마, 이거 잘 가지고 있어야 돼.”  

   

아이의 당부가 떠올라 풍선을 주워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드디어 가벼워진 손이 두둥실 날아오른다. 펼친 손가락 사이로 풍선과 사탕 조각과 종이 부스러기가 딸랑딸랑 흩어진다. 그것들이 더 날아가기 전에 다시 모아 손을 채운다. 어쩐지 가득찬 손이 불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조금 평온해진다.


오늘 하루도 잘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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