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하원하는 아이들이 작은 통을 들고 나온다. 갈색을 띤 불투명한 통 안에는 초록의 매실과 설탕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사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참 많은 식물을 심어 집으로 날랐다. 방울토마토, 상추, 싱고니움, 카네이션. 그리고 이 날은 심는 대신, 담근 매실이었다.
둘째의 몽실한 뺨에는 초록색 매실이 그려져 있었다. 그걸 구경하는 동안, 첫째는 매실액 만드는 법을 열심히 설명했다.
“백일 동안 매일 한 번씩 뒤집어 줘야 된대.”
백일이면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곰은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이 대단한 시간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주 충실히, 까먹지도 않고 하루에 한 번씩 통을 뒤집는 중이다.
동그란 매실은 녹은 설탕이 스며들면서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뒤집고 뒤집다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매실액이 만들어질 것이다. 첫째는 잊은 듯하다가도 가끔 확인한다.
“엄마, 이거 뒤집었어?”
“응, 와서 볼래? 설탕이 많이 녹았어.”
첫째는 주방으로 와서 까치발을 들고 불투명한 통 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옆에 놓인 싱고니움을 번갈아본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줄기로부터 잎이 풍성한 싱고니움은 얼마 전 아이가 심어 온 식물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있다가 묻는다.
“매실도 크고 있는 거야?”
직접적으로 잎이 나고 키가 자라는 화분 식물들을 보다가 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햇빛을 받는 것도 아닌데 변화하는 매실이 신기한 모양이다.
“크고 있는 건 아니고, 다른 걸로 변하는 중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가서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담근 매실이 변하는 과정을 남기고 싶어졌다. 기록하는 것은 작년 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생긴 습관이다. 연필과 종이를 들고 식탁으로 가 급히 쓰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어른이 되면 뭘로 변하고 싶어?”
아이는 방금 전 우리의 대화 속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나는 매실처럼 성실히 익어서 무엇으로 변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작가가 뭐야?”
“글을 쓰는 사람.”
어릴 적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은 무수히 받아봤다. 하지만 '뭘로 변하고 싶냐'는 질문은 참 새로웠다.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존재로 비친 게 기뻤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심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마치 내 의지를 확인이라도 하듯. 누군가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다짐은 성장한다.
앞으로 아이가 마주할 갈림길에서 가장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너는 뭘로 변하고 싶어?”
아이가 곰곰이 생각하며 식탁에 놓인 장난감 팽이를 돌린다. 종이 위로 올라와 뱅글뱅글 돌아가며 흩어진 글자들을 잡아당겨 엮는다. 팽이만 믿고 매실의 변화를 써 놓은 글 아래, 지금 우리의 대화를 이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