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play Aug 29. 2024

낭만 16 ξ 알아봐 줘서 진짜 고마워요

새똥을 맞았다

식당이든 미용실이든 정해놓고 다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꼭 정해야 할 곳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소아과였다. 추천을 받아 찾아간 소아과는 첫인상이 별로였다.  

    

1993년에 지어진 건물 입구에는 미묘하게 높이가 다른 두 칸의 계단이 있었다. 바퀴 달린 유모차는 입장이 곤란했고, 엘리베이터는 어른 3명에 어린이 1명이 타면 꽉 찼다. 한눈에 봐도 낡은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닫힐 때는 콰광, 열릴 때는 덜덜거렸다. 엘리베이터에 긴장하며 3층에 도착했을 때, 병원 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서 건물이 닳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날도 둘째는 콧물을 흘리며 제 다리 길이만 한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중이었다. 한 칸만 더 올라가면 되는데, 갑자기 뒤돌아 내려가려 했다. 아이는 병원 옆에 있는 빵 가게를 가리키며 “저기, 저기” 했다. 두려움과 고소함이 한 끗 차이였다.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리키며 실랑이하다가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빵은 병원 갔다 와서 사 줄게. 대신 주스 먹고 들어가자.”     


주스를 사서 빵 집 옆에 앉아 마셨다.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고작 두 칸짜리 계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툭, 하고 뒤통수에 가벼운 묵직함이 느껴졌다. 벌레가 떨어진 걸까. 가장 가까이 있던 요구르트 아주머니께 물었다.      


“저 머리에 뭐가 떨어졌는데. 좀 봐주세요.”

“어머, 새똥이에요.”     


벌레보다 더한 게 떨어졌다. 가방에 물티슈가 있었지만 초면에 똥을 닦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외출할 때 자주 잊는 물티슈를 챙긴 건 복선이었을까. 상황을 알리 없는 아이는 계속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저기 화장실 있어요.”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줬지만 ‘저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을 되물으려다가 관뒀다. 제 방향을 고집하는 아이를 꺾어 화장실에 도착한들 보이지 않는 뒤통수를 어떻게 닦을까. 위치도 모르는 화장실의 비밀번호가 1234라는 것만 또렷이 남았다.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을 서 있었다.

이런 게 군중 속의 고독이구나.     


보이지 않는 건 과장된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내 머리는 이미 똥밭이었다. 집에 가서 씻고 올까 싶어 휴대폰으로 소아과 대기 순서를 확인했다. 14번부터 시작한 번호는 벌써 반토막 나 있었다.

그때 길건너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아.”


누군가 위기에 처한 우리를 알아봐 준 것이다. 고개를 들었더니 오, 나의 이웃.    

  

“언니이!”     


혹시 손만 흔들고 지나갈까 봐, 이 기회를 놓칠까 봐 크게 외쳤다. 새똥섬에서 탈출할 기회였다.  

    

“나 좀 도와줘요!”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너무 간절해서 부끄럽지도 않았다. 다행히 언니는 신호를 건너 머리를 보여줄 만큼 가까이 왔다.    

  

“새똥 맞았어요.”     


언니는 나만큼 놀라며 물티슈가 있냐고 물었다. 아까부터 꺼내고 싶었던 물티슈를 드디어 꺼내서 건넨다. 언니 손에 새똥이 조금도 묻지 않길 바라며 말했다.     

 

“알아봐 줘서 진짜 고마워요.”      


‘알아봐 주다’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낯익은 생김새를 알아보는 것과 나를 위한 해결책을 대신해 주는 것. 이 모든 걸 해 준 이웃 덕분에 무사히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진료를 보고 나오며 간호사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접수만 하고 못 올 뻔했어요. 요 앞에서 새똥을 맞아서요.”


간호사들이 말하길, 건물 옥상에 비둘기 둥지가 많단다. 그리고 비둘기는 둥지를 틀면 장소를 잘 안 바꾼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 내가 맞은 게 비둘기 똥이었구나.    

  

계단을 내려오며 건물 끝을 올려다본다. 그러다 얼굴에 새똥을 맞을세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눌어붙은 새똥을 보며 아이를 안고 약국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약국을 나서는데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

-병원 잘 다녀왔어?

-감기래요. 근데 나 머리에 새똥 맞았어.

(중략)

-로또 하나 사요.

-----------------------

그래, 새똥 맞으면 운이 좋다는 얘길 들어봤다. 집에 오자마자 머리를 감은 뒤 검색해 본다.

검색어는 ‘새똥 맞으면’     


[새똥을 맞을 확률은 새 둥지 부근 기준으로 1/500~1/1000의 수준이고, 드문 확률을 뚫고 새똥을 맞은 것이기 때문에 운수가 좋다고 표현한다.]     


드문 확률을 뚫었으니 낮은 가능성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어서 집 근처 로또 판매점을 검색해 둔다. 그리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린다. 귓가에 부는 따뜻한 바람이 푸드덕댄다. 거울에 비친 머리칼이 날갯짓한다. 그 틈을 비집고 잠에서 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민준아”      


방으로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품에 안긴 아이의 손이 내 뒷머리를 토닥인다.        


‘벌써 운을 쓴 것 같은데?’      


로또 살 돈으로 우리를 알아봐 준 이웃과 핫초코를 한 잔 하는 게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