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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Aug 22. 2024

낭만 15 ξ 더 크고 단단한 껍데기를 위하여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조이고, 정신은 밤낮없이 또렷하느라 피곤하다. 아이는 아프고 나면 쑥 자란다지만, 크게 위로되지 않는 말이었다.      


처음으로 열이 나는 아이를 지켰던 밤이 떠오른다. 감기를 시작으로 번갈아가며 수족구, 폐렴, 편도염, 장염에 걸렸다. 낫고 나면 아이는 어느 방향으로든 자라났다. 

잘 먹거나 안 먹거나. 발음이 더 또렷해지거나, 생떼쟁이가 되거나.  

    

지난밤에는 무던히 반복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열이 또 찾아왔다.  

    

“엄마, 추워.”     


아이의 손과 발끝이 차가웠다. 경험상 이건 열이 더 오른다는 뜻이었다. 추워하는 아이를 얇은 이불로 감싸고, 손발이 따뜻해지도록 주물렀다. 그리고 위로가 되지 않던 말에 기대어 불안을 버텼다.  

    

‘얼마나 자라려고 그러니.’  

  

해열제를 먹은 아이의 작은 손과 발이 식었다가 데워지길 반복했다. 그사이에도 여전히 차가운 발끝을 매만지며 내 온기가 전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아침이 되어 서둘러 병원에 갔다. 오전 진료는 벌써 마감됐고, 오후로 넘어간 우리 차례는 스물여섯 번째였다. 집에 돌아갔다가 오후 1시에 다시 병원으로 왔고, 세 시간 반을 기다려 진료를 봤다. 


수액을 맞기 위해 들어간 주사실에서 아이는 아픔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눈물을 참았다. 휠체어를 대여해 밖으로 나오면서 울기 시작했는데, 무서운 마음에 갇혔던 울음이 터진 모양이었다. 


아이의 그런 얼굴을 또렷이 마주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평소 떼를 쓰는 얼굴에 담긴 욕심이나 장난기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오로지 아픔과 슬픔만 담겨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달래며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딸기 우유를 나눠 마셨다. 수액을 연결하기 전에 사놓은 샌드위치도 조금 나눠 먹었다. 


오후 5시 반, 병원의 일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접수처의 불이 꺼졌고, 그 많던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제야 우리는 작은 수액 하나를 다 맞고, 또 다른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나는 절반의 절반도 들어가지 않은 수액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게 다 들어가긴 할까. 

    

뜨거운 해가 지고, 하루종일 들락거린 뒷문은 폐쇄됐다. 밤이 오고 있었다. 소아과 앞 의자에는 우리만 남았고, 가끔 입원 환자나 보호자들이 곁을 지나갔다. 자꾸 아빠를 찾는 걸 보니 아이도 그들을 지나쳐 집으로 가고 싶은 것 같았다.    

  

우리는 드문드문 켜진 불 아래에 앉아 휴대폰이 꺼질 때까지 아기돼지 삼 형제를 보고, 바나나 과자를 나눠 먹었다. 그리고 아이는 약국에서 받은 손톱만 한 스티커를 내 손등에 꾹꾹 눌러 붙이며 놀았다. 작은 손이 사라지고 보인 스티커 속 글자는 '훌륭해요.'  

피곤했던 지난밤은 잊힌다. 

   

오후 8시. 입원 환자를 위한 낙상 주의 방송이 나온다. 1시부터 8시까지 앉거나 걸어 다닌 아이를 내 다리에 눕힌다. 차가운 곳에 살이 닿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의자 옆으로 떨어지지 않게 팔로 감싼다. 허벅지에 온기가 전해진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열을 내 다리로 옮겨오고 싶었다.   

집을 나선 이후로 처음 누운 아이가 막힌 천장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나도 천장을 올려다본다. 시선에 걸린 포도당 수액이 똑똑, 절반쯤 들어갔다.     

 

“우리 이제 그만 갈까?” 


아이를 안아 들고 비행기처럼 빠르게 걸어 응급실 앞으로 간다. 세 시간 반쯤 꽂고 있었던 수액을 제거한 뒤, 비행기만큼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지친 아이는 눕히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몇 번의 긴장과 무던한 밤이 교차하고, 마침내 열은 몸 밖으로 흘러나와 아이의 머리칼을 적셨다. 우리는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다음 날, 감기를 이겨낸 아이와 놀이터에 갔다. 폴짝거리는 아이를 뛰따르다 작고 하얀 걸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곤충의 허물이다. 곤충이 허물을 벗는 가장 큰 이유는 ‘몸집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탈피는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는데, 거치고 나면 더 크고 단단한 껍데기를 가질 수 있다. 

아프고 나서 쑥 자라는 아이와 비슷하다.       


‘모두 고된 밤이었구나.’     


곤충의 허물과 뛰어가는 아이를 번갈아본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러 번, 이런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때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커 나가길 소망한다. 저쪽에서 아이가 외친다.      


“엄마, 그네 밀어줘!”     


아이가 날 향해 손을 흔든다. 그 바람에 얇은 반팔 옷이 배꼽까지 올라가 얄랑거렸다.      

 

'쑥 자랐구나.' 


여름옷을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이에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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