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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몽 Mar 03. 2024

오늘부로 소심할 것을 포기합니다.

소심이에서 대담이로, 평온에서 문제의 늪으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다. 아이작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와 같이, 이 문장은 거의 하나의 명제로 자리 잡았다. 나는 어떤 일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편이다. 임차인 신분으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저 못은 내가 박은 게 아닌데 나보고 배상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든지, 회사를 휴직하기 전에도 휴직하고 수입이 없으면 뭘로 먹고살지, 갑자기 큰돈 들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든지, 내 머릿속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로 시끄럽고,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들을 예상한다. 심지어 결혼을 할 때는 다들 후회할 때 없냐는 말에, 돌다리도 만 번 두드려보고 건너는 성격이라 ‘간’만 3년 이상을 봐왔다고 대답한다. 결혼해서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갖가지 상황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 의대 입학시험보다 어려운 테스트를 통과한 어리바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편은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파워 J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무슨 문제가 생길지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는 크지만,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그 덕에 짜인 회사 일을 할 때는 실수도 거의 없고, 그래도 내 업무에서는 중간 이상은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발생가능한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일이 무리 없이 진행되게 하는 게 특기였다.


  대신에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는 짜이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무수히 많은 문제와 걱정거리들부터 떠올린다. 좀처럼 시작 버튼에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인생을 좀 더 앞서 살아본 선배들은 때론 ‘아무것도 몰라야 하지 알면 못해’라는 말을 하곤 하신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많다. 내가 아무리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시나리오로 일이 흘러가면 어떡하지?라고 짱구를 굴려서 시나리오 A, B, C와 Z까지 생각하더라도 그중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오직 단 한 가지뿐이며, 그렇다면 내가 미리 고민했던 B, C, Z는 그냥 말 그대로 ‘뻘짓’을 한 게 된다. 시간낭비다. 그러고 보면 회사 일을 잘하는 것과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의 이슈이다.


  작년에 두 달 동안 혼자 해외에서 나가서 살 일이 있었다. 아무 걱정과 고민 없이 오직 ‘잘 숨 쉬고 잘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임무였는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당시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집을 떠나와서 짧은 시간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외국에서 혼자 지내면서 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집을 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구속이다. 대출이자다. 한국에서의 나를 생각해 보면 항상 모든 문제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달이면 달마다 돌아오는 대출이자, 부담해야 하는 원금 또 해결해야 하는 가족들 간의 문제, 그리고 풀리지 않는 내 감정들과, 죽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매일의 루틴, 죽는 그날까지 참아내야 하는 묵은 과거들. 이 모든 것들에서 안녕을 선언하고 혼자이고 싶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느낀다. 그런 구속과 틀이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그런 문제들이 나의 집 그 자체였다고 말이다.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며, 문제가 없는 인생은 멈춰있는 인생이나 다름없다. 어렵지 않은 하루는 없다. 내 생각에 모든 사람의 인생은 무언가에 묶여있는 것 자체다. 다만 내가 어떤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기로 결심하면 그만이다. 결심하면 할 수 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의 늪으로 용감하게 달려가는 것. 그게 집 다운 집에서 행복다운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비법인 것 같다.



  이때의 나는 꽤나 멋진 교훈을 얻었던 것 같은데, 역시 망각하니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망각하는 것 아닐까? 맞다. 문제없는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소심이로 문제에 하루와 내 기분을 지배당하면서 살지, 대담이가 되어 문제를 마주쳐도 당황하지 않고 ‘오 그래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두 팔을 걷어 부칠지,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부로 소심할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문제의 늪으로 달려갈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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