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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몽 Mar 04. 2024

나 좋으라고 하는 일들을 하며 사는 것. 일종의 부화.

 우리 아빠는 취하는 것을 좋아했고, 취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커피를 항상 두 대접씩 들이키며 잠을 깨는 사람이었다. 담배를 줄곧 폈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폐암에 걸린 이후 방송에 나오셔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설파하시기 전까지, 어린 나는 아빠 옆에서 구수한 담배연기를 힘껏 들이마시는 것을 취미로 가졌다. 아빠는 생활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마음이 여리고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면 항상 지금도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아침이 되면 나는 항상 아빠의 새끼손가락을 잡고 외할머니네로 끌려갔다. 무조건 시장을 지나쳐야만 했는데, 도깨비시장에는 길거리에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아빠는 말을 붙이지 않고서는 지나치지 않았다. 추운데 이런 날씨에도 나오냐면서 필요도 없는 시금치나 고사리 등을 이것저것 몇 만 원어치는 사서 외할머니에게 그냥 사 왔다며 건네셨다. 어릴 때 아빠를 생각하면 기억이 나는 풍경이 있다. 박스를 줍는 모르는 할아버지를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도와주고 나서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뽑아서 쭈그려 앉아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다. 대여섯 살의 나는 열심히 줍는 아빠를 가만히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바라보고 있던 딸이었다. 엄마는 이런 아빠가 싫었다. 어린 나는 ’ 엄마는 이렇게 좋은 사람한테 왜 뭐라고 하는 것인가 ‘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성적인 어른이 되어서 이제 엄마도 이해하고 아빠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원하지도 않는데 가장이 되었다. 어린 나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가 공무원이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직장에 최선을 다했고 그것만이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본인이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고, 키가 157cm도 안 되는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크고 강해졌다.


 그래서 엄마는 나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나 보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안 할 때도 혼내지 않았고, 고등학생인 내가 친구들이랑 소주를 몰래 사 먹고 정신 못 차리고 들어왔을 때도 토하는 내 등을 두드려주고,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불을 꺼주고, 꿀물을 타줬지만, 내가 인내심과 뚝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냈다. 엄마는 내가 불안정한 삶을 사는 미래를 갖게 되는 것이 몹시도 불안한 나머지, ’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굳건히 버티지 않는 딸은 딸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고, 또 엄마의 세계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실 조금 살아보니 나는 아빠를 조금 더 닮은 사람인 것 같다. 나도 어느새 아빠처럼 자라 커피를 두세 잔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소주 몇 잔에 취해서 친구들이랑 왁자지껄 떠드는 걸 좋아하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좀 해볼 수 있을까 기웃거리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처럼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고, 땅에 두 다리 딱 붙이고 살려고 노력해 봤지만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편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사람은 그 누구에게나 알이 있다.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 선택하지 않은 장애물을 떠안고 엎치거니 뒤치거나 살아간다. 이것이 내 알이다. 알은 언젠가 뚫어야 한다. 목적을 거창하게 붙이자면 본연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솔직히는 그냥 그래야 숨도 쉬어지고 좀 살 것 같으니까. 나는 아빠가 안타까웠고, 엄마가 불쌍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의연하게 세수를 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 않고 내리고, 건물에 들어가고,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아도 숙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고, 다음 달을 또 살아가는 사람. 이 역할을 더 이상 몸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할 때까지 소화해 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미션으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이 역할을 굳이 억지로 소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관객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쓸모없다고 여겨지고 미움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일이 그저 ‘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왜 이렇게 좁고 답답하지? 이곳은 알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좋다. 금붕어는 3주면 부화하고, 공룡은 6개월이면 충분하다는데 나는 30년이 넘게 걸렸지만 그래도 와야 할 곳에 잘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는 좋을 대로 아빠의 자유로운 정신과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굳건함만 취해서 나대로 영차영차 삶을 꾸려가고 싶다. 누구 좋으라고 살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을 하며 살기로 결정한 것이 부끄럽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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