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데
휴직을 하면서 하루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물론 그 규모는 매우 작다. 오늘은 오전에 카페를 가서 작업을 할지 아니면 오후에 할지, 혹은 도서관에 가서 어떤 책을 빌려볼지,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선택들을 내 손으로 만들어가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아무리 작은 선택이더라도 나의 의지대로 굴러가는 24시간은 내게 안정감을 준다. 일종의 통제감이랄까. 매일 의지와는 관계없이 9시-6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마련된 빌딩으로 들어가서 정해주는 자리에 앉아서 일했을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하루다. 그렇지만, 선택의 규모가 커졌을 때의 나도 지금과 같이 안정감을 느끼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아이를 낳을까 말까, 직업을 바꿀까 말까'와 같은 내 인생 전반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길 수 있는 선택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부담감에, 그냥 부처님이시든지, 하느님이시든지, 저에게 정답을 내려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어질 것 같다.
나도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자국을 많이 남겨왔다. 대표적으로는 대학교 진학을 결정할 당시에, 네이버에 '연봉 1위 직업'을 검색했던 고등학생의 나, 불행하게도 그 당시의 연봉 1위는 회계사였었나보다. 연봉을 인생의 최우선 척도로 생각하자는 선택과,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자는 선택, 신문 기사에서 읊어주는 것을 미래의 내 직업으로 삼자는 선택, 이러한 선택들이 합해져서 천성과 전혀 안 맞는 경영 및 회계에 내 인생을 던져보겠다는 결심을 만들었다. 첫 수업을 듣자마자,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머릿속을 스쳤었다. 어린 나는 인생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나'를 아는 것이 인생사 살아가는데 그토록 중요했던 것임을 간과한 것이다. 오기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심지어 세법을 공부할 때는 새벽 2시에 휴지로 눈물을 닦아가면서 펑펑 공부했고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공인회계사 자격증 대신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것이 내 첫 번째 자국이다. 이 자국은 너무 진해서, 취업난이었을 때 나를 먹여 살려준 쌀알이 되었지만 내 인생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두운 동굴로 점점 더 나를 이끈 선택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당시에는 내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했던 선택들이, 지나고 보니 나를 옭아매었다든지, 오히려 미래의 선택권을 박탈했었구나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지나간 시간이 마음이 시리도록 안타까워도 방도가 없다. 그때 밀려오는 공허감은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대가이자 배설물로 남는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 죽는 것까지 길고 긴 시간이 하나의 그림으로 남는다고 하면, 도화지 맨 왼쪽은 Birth(탄생)이 될 테고, 도화지의 맨 오른쪽은 Death(죽음)이 된다. 그 사이 그림은 나의 '그러기로 한' 결정과 붓터치로 만들어질 것이다. 미술관에서 가서 보면 어떤 그림은 붓으로 아무렇게나 터치한 것 같으면서도, 완벽한 선, 사진 같은 구도와 명암을 가진 그림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사진 같은 그림과는 다르게 만 명이 본다면, 만 개의 질문을 갖게 하고 십 만개의 정답을 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 그리는 그림은 사실주의가 아니라 추상주의다. 분명한 것은 내 그림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그림일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기감도 주고, 절정도 주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앞에 놓은 수많은 붓터치는 방향이 조금 잘못되거나 농도가 의도한 바와 다르더라도 그에 맞는 다음 터치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은 내 앞에 놓은 수많은 결정들 가운데, 그 사이에 '나'를 잃지만 않는다면 도화지 오른쪽까지 꽉 채웠을 때 누구도 그릴 수 없는, 나 이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미숙한 나의 지난 선택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