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몽 Feb 27. 2024

출근하는 인간

돈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는데, 참 이상하지, 돈이 없다는 게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그중에서 제일 요지경스러운 것이 있다. 어느 특별하지 않은 날, 아침이었다. 지하철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출근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주식 유튜버들이 간밤에 올려놓은 동영상들을 체크했다. 네이버에서 경제 뉴스를 훑었다. 시황을 공유해 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지난날 서울시 아파트 매매동향을 훑었다. 문득,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똑같은 자리에서 머리가 짧아지고, 얼굴과 손에 주름을 가지고 있는 내가 같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응시하며 출근하는 장면이 보였다. 살다 보면 논리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중 가장 이상한 점은, 아침에 일어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출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출근길에 주식뉴스를 그렇게 찾아보는 사람인 내가, 수중에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돈을 위해서 하루를 온전히 바치고 있는데 돈이 없다니, 적어도 ‘돈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너무나 아이러니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동기들과 5년 전부터 나눴던 대사들은 토씨 한 톨도 틀리지 않고 똑같이 주고받는다. ’ 졸리다.‘,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말을 대체한 지 오래됐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침 점심 저녁을 알리는 알람시계처럼 속에서 튀어나온다. 결국 나의 시계열을 뒷걸음쳐서 길게 봤을 때, 나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회사생활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내일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설렐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기도 하고, 성공시키고, 주변 동료들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하고, 기분 좋게 회식도 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월급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누구와 어울릴지, 나의 지위가 어떻게 될지, 내일은 오늘의 지위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는 향상을 기대하며 출근하기도 한다. 성취감이든, 지위든, 우리는 모두들 다른 것을 기대하며 출근을 하지만, 그중 나의 기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순간 월급이 되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하루가 급격히 무료해지기 시작한 것이. 돈 외에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다. ‘몇 백만 원’을 위해 하기 싫은 송년회를 기획했다. 상품을 팔았다. 밖에서 만나면 말도 섞기 싫은 고객을 끝까지 응대했다. ‘몇 백만 원’을 위해  민원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웃었다. 쉬고 싶은데 쉬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도 일이 많은 듯 행동하고, 지루한 시간을 참아냈다. 내가 회사에서 했던 모든 행동들과 웃음의 목적이 몇 백만 원의 돈이 되었다. 나는 숫자로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없는 자본주의 세계에 제 발로 들어가서 제 손으로 몇 백만 원짜리 인간이라는 가격표를 이마에 붙였다.


  칠십 세의 노인이 된 나를 떠올려본다. 젊은 날의 나를 되돌아봤을 때, 월급만을 머릿속에 넣고 살아온 나를 뿌듯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월급쟁이가 월급 받아 차곡차곡 모으면 누구나 예상가능한 숫자가 통장에 찍혀있을 것이다. 통장을 보면서 ‘정말 잘 살았어’라고 웃을 수 있을까. 손주들을 만나서 해줄 이야기는 이 정도이지 않을까. ‘응~할머니는, 평생 살면서 정말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많았는데, 그래도 꾹꾹 참았어. 그래서 월급을 받았지. 결국에는 퇴직할 때는 이만큼 모았단다.’ 나는 인생의 업적이 ‘잘 참은 것’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래서 모두 회사를 뛰쳐나오자, 자기만의 직업을 갖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례로 내 회사 동기 중 하나는 회사에서 실적을 쌓는 것을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즐기는 친구가 있다. 오늘 하루, 어떤 고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것, 고객을 도와주어서 고객이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는 걸로 하루를 감사함으로 채우는 친구이다. 어떤 친구는 퇴근 후에 스킨스쿠버, 다이빙, 악기 배우기 등 월급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월급을 받아서 라이프스타일을 향상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친구도 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했다. 요즘 정말 충만하다고. 문제는 회사 안이냐 밖이냐가 아니라, 궁극의 목적이 오직 돈 안이냐 밖이냐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가 어지간히 들어서 지난날을 되돌아봤을 때, 그저 월급 잘 받은 게 인생 최대의 업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기 위해서 나머지 시간을 잘 참은 할머니이고 싶진 않다. 손주들이 스무 살 즈음 혹은 더 넘어서 인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나의 굴곡을 들려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주식 투자가 너무 재미있었어! 그래서 이런 걸 공부해 봤지, 이런 시도를 해봤는데 맞았던 거야. 그래서 얼마를 벌었단다.’와 같은 돈이 아닌 돈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고, 요가가 너무 좋아서 발리로 요가여행을 떠나 요가구루가 된 할머니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회사에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싶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어떤 장애물이 와도 그것을 뛰어넘은 할머니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고, 자기만의 아이디어가 세상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고 싶어서 실험해 본 이야기들도 듣기 좋을 것 같다. 진짜 부자, 이야기 부자가 될 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