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 구독 이후 최초 완독 기념사 : <요즘 것들의 사생활>
나의 귀여운 월급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나가는 금액이 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전기료 가스비 등 각종 공과금
- 영끌 주식투자를 위한 마이너스통장 이자 및 전세자금대출 이자 몇푼
- 생활비 통장으로의 이체
- 쿠팡 로켓배송 5,000원 상당의 금액 정기결제
- 넷플릭스, 왓챠 그리고 밀리의 서재
물론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부분은 단연코 2번이지만 나에게 가장 큰 죄책감을 안겨주는 분야는 정기구독결제 서비스에 관한 지출이다. 구독을 했으면 뭐라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인데, 손가락 운동을 위한 스와이프 용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다르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지 어언 n개월 만에 처음으로 책을 완독했기 때문이다. 조촐한 기념식을 갖기 위해 이 글을 써야겠다. 책의 이름은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이며 지은이는 이혜민, 정현우 작가님이다. 요즘 2030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에 관한 인터뷰집이다.
7살 때부터 모범생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고 범생이 외길인생을 걸어온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삶의 방식이 나열되어있다. 나는 범생이였기 때문에 7차 교육과정이 시키는대로 성장해왔다. 학과 역시 나의 가슴 깊은 소망과는 거리가 먼 회계학과를 선택했다. 모범생의 최후말로는 "사"짜가 되어야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결국 "사"는 못되었지만 엇비슷한 길로 발을 헛딛였고 내 몸 하나 건사할 공간과 음식정도는 마련하고있다.
일생 나의 욕망과 소망을 억제해온 탓인지 나는 '업'에 관해서는 아직도 사춘기를 겪고있다. 다행이도 범생이로 버텨온 23년의 세월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윗사람 말 잘듣고 아랫사람 잘 챙기면서 문제는 적당히 회피하고 매월 꽂히는 금액에 만족하고 주말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불확실한 삶을 꿈꾼다. 겁먹으면서 꿈을 꾼다. 그래서 나는 항상 콤포트 존에 있다. 벌벌 떨면서. 콤포트 존 밖의 삶은 날카로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월급이라는 것도 사실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껴지거든요. 우리는 입사해서 정년퇴임을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월급이라는 것도 결국에 회사가 주고 싶을 때까지만 이어지는 그런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지금 단계에서 나는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들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나, 어떤 변화에도 적응하는 나, 어떤 일 앞에서도 맥락을 갖추는 나,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고, 왜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나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고 그게 지금 내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오라는 시간에 출근해서 허락해주는 시간에 퇴근하고,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회사가 배정해준 사람과 일을 하고, 회사가 주겠다고 말한 월급만큼만, 딱 그만큼의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도 회사가 허락해주는 날까지만 가능한 거였죠. -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중에서
내가 지금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고,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고 그걸 따라 하세요. 마치 내가 그 사람인 양. 내가 부러운 사람이 누군지 찾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 내 자신을 이해하게 되거든요. -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중에서
귀납법으로 내 일을 찾아가는 방법. 가장 심플하면서도 명쾌한 답변이었다. 내가 평소에 부러워 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때로는 100가지의 철학적인 답변보다 1가지의 작은 생각의 전환이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행복은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순간 시작된다고 한다. 모든 무기력과 비효율은 이 일이 더이상 내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 시작된다.
좀 더 날카롭게 살고싶다. 날카롭고 깨어있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더이상 겁에 질리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이해하고 싶다. 방정식이 아니므로 인풋 대비 아웃풋을 기대하지 않으며 다만 내 손으로 내 하루를 빚고싶다. '진짜'를 살고싶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해결하라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풀어가며 성취하고싶다. 짜여진 규격속에서 답을 찾고 싶지 않다. 용광로 처럼 뒤섞인 정글같은 문제들 사이에서 나의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싶다. 이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손과 얼굴에 흙을 묻히면서 벅차서 웃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