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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나물 Sep 22. 2022

자랑이 되지 않는 일상

 크로아티아에 살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이곳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한국과 비교하는 일이다. 어느 나라가 더 좋은지 나쁜지와는 관계없이 이 습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지난 30년 간 영점 조절의 기준은 언제나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실 때도 비교는 계속된다.


 한국에는 참 멋있는 카페가 많다. 하나의 컨셉을 연출하기 위해 내부 공간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소품들도 놓여있다. 잠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멋진 취향을 잠시나마 소유한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 기분을 남기기 위해 어떤 날엔 카메라 앱을 켠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커피잔과 케이크 접시를 옮겨 구도를 잡는 순간, 나는 어김없이 불편해진다. 카메라를 든 나의 손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도 기이하게 느껴진다. 손님들의 연령대가 내 또래밖에 없다는 사실마저도.


 크로아티아의 카페는 (일부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 실내보다 테이블이 두 배는 많은 야외석, 과추출된 에스프레소, 무심하게 턱 내려놓는 수돗물 한 잔, 재떨이 밑에 영수증. 딱 이천 원어치의 서비스를 누린다. 커피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커피의 존재감은 영화로 치면 엑스트라에 가깝다. 누군가의 멋진 취향은 이 공간에 단 한 방울도 섞여있지 않다. 크로아티아의 카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사진을 찍기 위한 포토존도 없고, 서로를 찍어주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앉는 상대방에게 눈길을 돌린다. 대화를 하다가 나무를 보다가 침묵이 이어지고,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게 전부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앱을 켠 사람은 영 어색해진다. 시간을 무심하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들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카페에 갔을 때 사진을 찍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었고, 나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분명 불순한 자랑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카페엔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망가트릴 소품도 없다. 대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과 놀이터가 있다.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오래된 건물 삼 층에 위치한 카페도 없다. SNS를 하지 않는 어르신들은 소외되지 않는다. 동네 할아버지들 옆 테이블에선 대학생 손님이 앉아 과제를 한다. 개를 데려오는 것도 언제든 환영이다. 카페 한편엔 개를 위한 물그릇이 놓여있다. 누군가는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 와 커피와 함께 배를 채운다. 그 옆엔 어김없이 쫑쫑 뛰는 참새와 비둘기들이 있다. 그는 먹던 빵의 모서리를 떼어 새들에게 나눠준다.


 동네에는 잔디밭이 많다. 가장 가까운 마트로 가는 길에 위치한 잔디밭은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어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이번 여름이 시작될 때 그곳에 플라스틱 통 하나가 놓여있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약수터였다. 까마귀와 비둘기가 물통에 부리를 대고 목을 축였다. 물통이 바닥을 드러내면 누군가 부엌에서 물을 떠 와 다시 채워놓았다. 혹여 넘어질까 봐 돌로 괴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을 채워 놓는 사람의 얼굴은 매번 달랐고, 그들의 행동은 으레 하던 일처럼 무신경하게 이루어졌다. 물통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엔 딱딱해진 바게트 조각들이 뿌려놓기도 했다. 어떤 존재든 소외시키지 않는다.


 아이들과 노인, 개와 . 자랑이 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공평하게 평화롭다.



 안녕하세요, 집나물입니다.

 잠시 여행을 오게 되었습니다. 다음주(10/6)에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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