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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Jul 29. 2022

애는 엄마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만

[산업부 어쩔기자 일지⑪]

"사실 아줌마들이 같이 일하기 편해. 미혼들은 신경 써야 하고 피곤하다고."     


내일 모래 퇴직을 앞둔 한 협회 임원과의 점심 자리, 자꾸 아줌마, 아줌마 한다.      


"저기요! 듣는 아줌마 기분 나쁘게 계속 아줌마 아줌마 좀 하지 마세요!"     


친한 사이니까 웃어넘길 수 있는 말들.      


그래, 나 애 둘 딸린 아줌마 기자다! 그래서 뭐?     


"우리 회사에 애 둘 가진 여자는 선배밖에 없어요. 선배가 잘 버텨주세요!"     


회사의 개똥이 여기자는 애가 하나 있다. 둘째도 고민하고 있단다. 개똥이 기자가 말해서 처음 알았다. 우리 회사에 애 둘 딸린 여기자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둘째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것이 5개월 전. 물론 조직에서 1년 3개월 동안 육아휴직, 출산휴가를 모두 쓰고 온 기자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는 것은 없다.      


단지,      


후배에게 취재 지시를 내렸는데, 데스크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에게 전화를 한다.      


데스크:    왜 애를 그런 행사에 보내는 거지? 그게 산업부에서 다룰 사안인가?

어쩔기자: 아, 그게 말이죠, 인맥을 좀 다져보라는 차원에서 보냈는데 말이죠, 블라블라블라블라 솰라솰라솰라솰라~

데스크 :   인력 부족해서 산업부 기사 처리하기도 바쁜데...(한숨)....너 육아휴직 갔다 오더니 감 떨어졌냐?

어쩔기자: ......     


제가 후배에게 업무지시를 한 것과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것은 무슨 상관관계를 갖죠?     




데스크 대신 들어간 아침 데스크 회의. 회의 시작 전 데스크들이 모여앉아 있다. 그리고 옆에 앉은 데스크가 반갑게 나를 알은척 하며 큰 소리로 묻는다.      


데스크:    김 차장, 애는 잘 크지? 지금 애는 누가 봐?

어쩔기자: (어색 웃음)어린이집 선생님이 보시죠.     


저기, 관심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데요,      


기업 홍보팀 팀장과 미팅 자리.      


"김 차장님 일 하시면 애는 누가 봐요?"     


애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봅니다만,

다들 왜 그렇게 애 누가 보는지 궁금하신가요.     


30대 초중반, 한창 현장에서 날고뛰어야 할 시기. 두 번이나 육아휴직을 하고 온 직원을 반길 조직이 몇이나 될까. 하물며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언론판은?


'차장을 일찍 달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연차 어린 남자 기자들한테 밀릴 뻔 했네.'

아무리 조직생활에 취미가 없는 나라도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개똥이 차장 이제 큰일 났어요. 임신했거든요!"     


A기업 홍보팀 소똥이 차장이 말한다. A기업 홍보실에서도 욕심 많고, 일 잘 하기로 유명한 개똥이 차장. 임신을 한 게 큰일 날 일이었던가요.      


"임신하고 팀장한테 찾아가서 제일 먼저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임신했는데 자신을 업무에서 배제하지 말아달란 말이에요. 이제 휴직 들어가면 자리도 위태로워질 텐데 아마 엄청 쫄고 있겠죠."     


사내 정치가 극심하기로 유명한 A기업에서 개똥이 차장은 출산을 하고 조직으로 다시 돌아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개똥이 차장의 절박함이 남 일 같지 않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데스크가 나를 배려한다고 데스크 대신 들어가는 데스크 회의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물론 임신한 나를 위해 아침 일찍 회사에 들어오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지만,      


"선배, 저 임신했다고 업무에 영향을 주는 건 싫어요. 저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했던 나의 마음은 아마 개똥이 차장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 감기 직전까지 일 하는 워킹맘의 일상.


일을 버릴 수도 없고, 아이를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 그저 '난 일 하는 기계요' 하며 마음을 내려놓을 수밖에.      


무뎌져야 한다.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일을 하는 모진 엄마란 주변의 시선에.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어디 하나 제대로 걸친 느낌을 받지 못하는 막막한 삶 속에.      


그래서 내가 일 하는 동안 애는 누가 보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애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고요,

일할 땐 정신없어서 애 생각은 별로 안 나고요,

일하는 도중 키즈노트에 올라온 아이 사진 보면 하루에 30초 정도는 아이가 그리워지긴 합니다만,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짜증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존버'는 결국 승리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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