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심소현 Oct 05. 2021

나 산후 우울증인가 봐

성격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시 때도,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도 힘들긴 했지만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할 때는 좀 힘들긴 했지만 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결정을 하면서 그 시기를 극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나를 완전히 집어삼킨 것은 산후 우울증이라는 괴물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왔을 때 흔히 하는 “나 좀 우울해”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 나는 산후 우울증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산후 우울증은 10명 중 8명이 겪을 만큼 흔한 증상이라는 것이다. 출산 후 몸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힘든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산후 우울증이 나타난다. 별 것 아닌 것도 확대해서 보게 되고 그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그런 증상들이 하나의 징후가 될 수 있다.


연년생 육아는 상상 이상이었다. 오롯이 신생아만 봐도 어려운 판국에 첫째도 아직 아기였다. 발달 단계상 제1 반항기(18개월~36개월)에 접어든 때였는데, 세상에 나온 동생의 존재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아직 서툰 언어로 인해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지른다거나 물건을 던진다거나 동생을 괜히 찌른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엄마들이 처음부터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아이를 잘 달랜다.


“물건을 던지면 장난감이 망가질 수도 있고 누워 있는 동생이 다칠 수도 있어. 지나가다 엄마나 아빠가 맞을 수도 있고. 위험한 행동이니 앞으로는 하지 말자?”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고 엄마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아이는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물건을 또 던지고 어떨 땐 더 심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 슬슬 화가 올라와 어느 순간 폭발한다.


“야! 하지 말랬지. 몇 번을 말해! 던지지 마!”


그러면 결국 아이는 울고 나는 화가 난 상태로 상황이 종료됐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아이가 18개월이면 스스로 걷고 뛴다. 행동반경이 넓어지니 자신감도 생기고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진다.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아직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는 발달 중이라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는 아이의 행동 뒤에 감춰진 감정을 세심하게 읽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행동만 보고 부모가 섣불리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아이의 발달 단계는 고사하고 감정 다루는 법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내 감정 추스르기도 버거웠다.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챙겨주어야 할 엄마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던 것이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에서는 모든 행동 뒤에는 ‘욕구’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물건을 던지는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욕구’가 있는 것이다.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시선을 끄는 행동으로 물건을 던졌을 수도 있고 동생이 태어나서 화가 나서 괜히 물건을 던진 것일 수도 있다. 이 물건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에서 던져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의 ‘물건을 던진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니 부모는 늘 화가 나고 아이는 혼이 난다. 이런 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의 난 무지한 엄마였다.


동생이 생긴 후, 첫째는 정말 엄마 껌딱지가 되어 한 순간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닌데 늘 "엄마~"를 외치며 나를 찾았다. 화장실 한번 마음 놓고 갈 수 없었다. 동생을 안아서 재우면 자기도 안아 달라고 하고 동생이 젖을 먹을 때면 자기도 먹고 싶다고 했다. 


“너도 어릴 때 엄마 젖 먹고 자랐어。 그런데 이제는 오빠가 됐으니 밥을 먹지?” 


달래 보지만 소용없었다. 동생이 젖을 먹는 반대편 젖을 먹겠다고 한다. 어린 동생이 하는 건 자기도 하고 싶은 거다. 일종의 ‘퇴행’이다. 나 역시 5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태어나기 전 부모님과 양가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음에도 동생이 태어난 후 퇴행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젖병에 우유를 달라고 하거나 실수로 오줌을 싸는 행동 등을 하는 것이다. 엄마의 관심을 동생에게 빼앗겨 질투를 하는 아이들은 괜히 엄마에게 혼날 일을 만들어 부정적 관심을 받으려고까지 하기도 한다. 


동생이 생긴 후 아이의 퇴행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넌 다 컸는데 왜 그러니”라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면 아이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젖을 먹고 싶다는 첫째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뭐 어려울 것 있나 싶었다. 모양새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결국 한쪽은 둘째, 다른 한쪽 첫째가 차지했다.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낮에는 첫째에게, 밤에는 둘째에게 시달렸다. 남편이 밤에 도와주긴 했지만 다음 날 또 출근하는 사람에게 아이 재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기 어려웠다. 둘째는 아빠가 안으면 더욱 자지러지게 울어서 “그냥 내가 재울게”라고 하는 날이 많았다. 젖을 물리고 재우면 그나마 잘 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심신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만 갔다.


어느 날은 일이 있어 아이들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뒤에서 두 아이가 계속 보채고 울어댔다. 우는 소리가 지긋지긋했고 더 이상 듣기 힘들었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액셀을 심하게 밟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이렇게 달리면 어떨까. 죽으면 이 고통이 없어질까?’


산후 우울증이 심각했다. 그러나 당시엔 몰랐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소름이 끼치지만 당시엔 그 정도로 힘들고 우울했다. 게다가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날에는 더욱 그 우울증이 심해졌다. 어느 날은 퇴근 한 남편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 힘들어. 손이며 뼈 마디가 안 아픈 곳이 없어. 그런데 쉴 수도 없고. 자기는 그런 거 알지도 못하잖아.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미치겠어. 엉엉 엉엉”


그때 그렇게 울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나는 매일 한계를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나의 그릇보다 더 큰 상황을 마주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전 01화 아직 준비가 안된 연년생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