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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08. 2021

본격적인 육아 공부

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려웠다. 산후풍으로 몸은 으슬으슬 추웠고 뼈 마디가 다 아팠다. 하지만 아기를 안아야 했고 젖을 물려야 했다. 첫째의 성장통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때마침 동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직장 어린이집이었는데 이번에 대거 인사이동이 있어서 7년 만에 일반인에게 연락이 간 거라고 했다. 그때 첫째는 32개월, 우리나라 나이로 4살이었다. 하루 종일 다 같이 붙어 있는 것보다 오전에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환경이 바뀌니 본인도 즐거울 수 있고 나도 그 시간이 좀 쉴 수 있으니 어린이집 입학을 희망한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첫째는 32개월, 우리나라 나이로 4살에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이 어린이집은 아이 입장을 많이 배려하는 곳이었다. 보통 아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적응할 때 어떤 곳은 첫날부터 아이만 맡기고 엄마는 바로 집으로 가야 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엄마와 함께 등원해서 같이 지내다가 서서히 시간을 줄이는 시스템이었다. 첫 일주일은 30분 엄마와 함께 있고, 그다음은 15분, 그다음은 5분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3주에 걸쳐 적응 기간을 두었다. 첫째는 엄마와 함께 새로운 곳에서 단 둘이 함께 있으니 정말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다소 어색한 듯했지만 곧잘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3주가 되는 날에는 엄마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3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쳤다. 


문제는 4주째 되는 날 터졌다. 그날도 기분 좋게 등원을 했는데 선생님 두 분 중 한 분이 안보이셨다.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안보이자 교실에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다른 선생님이 안아주려 했지만 거부했다. 그리고 집에 가자고 했다. 설득해서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점점 불안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더니 들여보내려는 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달래다가 울음이 점점 커졌다. 원장 선생님이 오시더니 아이를 안아 주셨다. 크게 울며 저항하는 아이를 보고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제가 안고 있을 테니 돌아가시라”는 원장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엄마가 곁에 있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오히려 더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이집 밖 담장 너머로 아이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이는 결국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선생님 품에서 울다 잠이 들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를 만나러 갔다. 의외로 밝은 모습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울다 잠들었는데 일어나서 활동도 잘하고 밥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다른 선생님께서는 집에 상을 당하셔서 오늘 부득이하게 결근을 하셨다”라고 "적응 기간의 연장선상인데 결근을 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미 벌어진 일, 다행히 아이의 얼굴이 밝아서 마음이 놓였다.


첫째의 어린이집 적응 기간 동안 아기를 봐주시는 도우미 선생님과 어머니가 번갈아 둘째를 봐주셨다. 그 덕에 나는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3시간 동안 조금이나마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둘째를 봐야 할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혼자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어린이집 4층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아이 등원시킨 후 도서관을 혼자 둘러보았다. 육아서부터 교육서적까지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등원 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 책을 한 두권 골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와닿는 제목을 골랐다. 그렇게 나의 육아 공부가 시작되었다.


전에는 몰랐다. 왜 그렇게 아이가 엄마만을 찾는지, 왜 그렇게 떼를 쓰는 건지, 밥은 왜 그렇게 안 먹는 건지.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불평만 했다.


“아 정말 힘들어 죽겠어. 왜 그렇게 엄마만 찾는 거야? 정말 미운 네 살 맞나 봐.” 

"밥은 왜 이렇게 안 먹어? 잘 먹어야 쑥쑥 클 거 아냐!!"


적극적으로 아이의 상황을 궁금해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상황 자체만 바라보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이들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특히 뇌 과학이 말해주는 내용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인간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의 뇌, 즉 전두엽이 영유아기에는 발달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어른처럼 할 수 없다는 점, 반면 본능과 감정의 뇌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행동도 많이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내용들을 알고 나니 아이의 행동에 전처럼 화가 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육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부터 공부했다. 특히 애착에 대한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유아기의 애착 손상에 따른 다양한 사례와 연구내용을 접하면서 아이들의 정서만큼은 안정적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외에도 여러 육아서를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나보다 앞서 아이를 낳고 키운 선배 엄마들의 글을 읽으며 눈물 콧물 흘리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어떤 책은 내용이 궁금해 아이들 재우고 밤을 새워 읽기도 했다. 예전에 대학원 시절 공부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잡념도 조금씩 사라졌다. 여전히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새벽녘까지 온종일 아이들과 씨름한 후 두 아이가 잠들면 허무한 감정이 밀려오기 일쑤였다. 나도 아이들과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이들이 먼저 잠든 날이면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공허하고 허무했다. 남편이 옆에 있었지만 엄마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외로웠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몸은 피곤하고 심신이 지쳤는데 우울하고 외롭고 힘든 감정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 끝에서 책을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은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책에서 위로를 받았고 안정을 얻었다. 하루에 한쪽을 읽더라도 좋았다. 몸이 피곤하면 영양제를 먹는 것처럼, 나의 마음과 정신에 영양제를 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육아서 위주로 읽었다. 그러다 관심 분야가 점점 확장됐다. 교육, 심리,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생기고 궁금해졌다. 관심 분야가 넓어지고 지적으로 성장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책 읽기로 시작한 육아 공부는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붙일 곳을 찾은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우울하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또 뭘 읽지?’라는 생각에 설렜고, 도서관의 많은 책들 사이에 있으면 마음에 편안해졌다. 어린이집 도서관 이외 동네 큰 도서관 두 군데를 오며 가며 책을 빌렸고 대형 서점, 중고 서점에 가는 게 취미가 되었다. 


육아, 교육, 심리 등에 대한 책들은 내 삶과 동떨어진 게 아니었다. 아이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남편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동안 30년 만에 처음 접해보는 '육아'라는 고난도 작업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론적 지식을 장착하니 실전에 도움이 되었다. 육아 공부는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을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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