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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08. 2021

엄마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이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 아이가 다섯 살이면 엄마도 다섯 살이다.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역할을 몸에 장착하고 태어난 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아이가 태어난 그때부터 엄마로 살아가는 거다.


첫 아이를 낳고 처음 젖을 물렸을 때,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해냈다. 결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유는 계속 생기는데 유선이 완전히 뚫리지 않아 젖몸살을 앓았다. 그때 유두를 제외한 가슴 전체에 양배추 껍질을 차갑게 해서 붙이면 젖몸살이 완화된다고 해서 시퍼런 양배추 껍질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산후 조리원에서 모유수유 속옷을 입고 양배추 껍질을 붙인 채 머리는 며칠 째 못 감아 산발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았다. 원시인 몰골이었다. 추노가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낮이나 밤이나  젖을 물리고, 회복도 안 된 몸으로 아이를 안아 재우를 수백 밤. 아이는 조금씩 커 갔다.


 눈을 맞추고 뒤집기를 하더니 한두 단어씩 말을 했다. 한두 발자국씩 떼더니 걷고 뛰고 제법 엄마와 대화도 나누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그러던 차에 태어난 둘째. 한 번 해봤으니 둘째는 덤덤하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똑같이 새롭고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유독 울음소리가 우렁찼던 둘째를 태어나자마자 안았을 때, 그 뭉클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파르르 떨던 팔과 다리, 필사적으로 살려고 바둥거리는 몸짓,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 감동도 잠시, 첫째 때는 경험하지 못한 훗배앓이가 시작됐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 느끼는 진통만큼 아팠다. 출산을 했으니 젖은 또 불어와서 젖몸살이 시작되고 훗배앓이까지. 아직 회음부는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다. 앉지도 못하고 누워도 아프고 어찌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눈물만 흘렀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눈물이 베개로 뚝뚝 떨어졌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아픈데 저 작은 생명은 엄마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울고 있고 첫째는 외할머니 댁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싶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두 작은 생명, 내가 어서 일어나야 했다. 미역국을 한 끼에 두 대접씩 먹으면서 필사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육아는 산 너머 산이었다. 어려운 고비를 하나 넘겼다 싶으면 또 다음 고개가 나를 기다렸다. 모유수유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유식이라는 고개가 나왔다. 음식 만드는 걸 싫어했던 나로서는 고역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먹을 건데 당연히 엄마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이유식을 모두 만들었다.


 이유식이 끝나니 아이들의 식단, 놀이, 훈육, 배움 등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새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은 삼십 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도 배워 보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일들이었다. 게다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도 막막하고 어려웠다. 공교육 12년 착실히 받아 대학에 들어가 4년을 공부했고 심지어 대학원까지 진학한 여자인데 현실에서는 완전히 바보가 따로 없었다. 혼자 해 낼 수 있는 게 없었다. 매 순간 좌절했고 자존감은 점점 땅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생긴 불만은 밖으로 향했다. 남편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원망, 도저히 이해 못하는 행동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 그렇게 나의 분노 게이지는 점점 상승했고 견디기 힘들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는 것, 그것 밖에는 해결책이 없었다. 밖으로 아무리 나의 불만을 얘기한 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에게 계속 나의 분노를 쏟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는 철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은 불평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 머리가 아프고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땐 육아서와 교육서를 찾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읽었다. 내 안에 불만이 가득하고 답답할 땐 심리서를 뒤적였다.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정체성을 찾고 싶을 땐 인문학 서적을 들추며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통해 나의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됐고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다.


 첫째가 4살 겨울이었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창문을 열 수도 없고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연일 미세먼지 경보, 저감조치라는 재난문자가 발송됐고 노약자와 어린이는 외출을 삼가라는 내용이 모든 방송과 신문을 도배했다. 가뜩이나 육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매일 터지는 새로운 일들을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미세먼지까지 조심하란다. 어디에다 막 욕을 하며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아이만 낳으면 키워준다고 허풍 떠는 정부와 지키지도 않는 공약들을 내세우며 선거철만 대면 떠들어대는 국회의원들에게 성토하고 싶었다. 최소한 숨은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이다.


두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니 답답해서 집에서 더 아우성이고 층간 소음이 신경 쓰이니 아이들이 뛰면 '뛰지 말라'라고 또 소리를 지르고.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너무 화가 치민 나머지 청와대 국민청원에다 글을 올렸다. 20만 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미세먼지에 대한 청원이 하루에도 수 백 건씩 올라오던 때라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각종 맘 카페와 지인, 친척들에게까지 작성한 청원글을 퍼 나르면서 '동의' 의견을 부탁했다. 그러나 결국 기간 내에 20만 명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비록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남이 바뀌기를, 사회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이다. 내 생에는 절대 안 바뀐다. 내 아이들 세대, 아니 그 아래 몇 세대가 지나야 겨우 한 걸음 진보할지 모른다. 아니,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국회의원, 대통령, 사회가 바뀌길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아까운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였다. 설사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위정자가 있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 노력한다 해도 주변 정세에 따라 국가의 상황이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친구들과 툭하면 “이 나라를 떠나는 것만이 답이야.”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만 던졌지 이민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 보육에 대한 공약만 남발하고 정작 실천은 못하는 국회의원들을 '비난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건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내가 우리나라의 환경이 싫어 이민을 가고 싶으면 말을 하기에 앞서 준비를 하면 된다. 그리고 조용히 떠나면 된다. 그러나 난 정작 실천할 용기는 없으면서 불만만 쏟아내고 있었다. 국민 청원서 내용을 퍼 나르고 sns에 공유 부탁한다고 얘기하고 다닐 시간에 아이들 한 번 더 안아주고 책이나 한번 더 읽어주는 게 더 생산적이었다. 그 에너지를 모아 내가 정말 필요하고 원하는 곳에 쓰면 내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부터는 정말 내가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해서 그곳에만 집중한다. 내가 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고 그것만이 정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몰입해서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한다. 포기도 능력이라는 걸 알았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붙잡고 걱정하고 있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곳에만 에너지를 쏟는다'. 미세먼지가 나에게 준 값진 교훈이었다. 그때 이후 내 생활에서 되도록 불평과 불만을 빼도록 노력한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는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 있다고 불평하지, 나는 쓸데없는 가시나무에 장미가 핀 것을 감사한다.'   -알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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