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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당신의 '야구장'은 무엇인가요?

회복탄력성은 작고 사적인 좋아함으로부터

by 커리어포유
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오늘 아침 친구 은진(가명)과 통화를 하는데, 목이 완전히 잠겨 있었다.

놀라서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야구 보면서 너무 소리 질렀더니 목이 갔어... ㅎㅎ"


은진이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팀의 골수팬이다.

(사실 부산 사람치고 롯데팬이 아닌 사람 찾기도 힘들지만...)

시즌권을 사서 틈나는 대로 경기장을 찾고, 혹시나 경기장을 못 가는 날엔 중계방송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런 은진의 응원에 힘입어(?) 롯데는 올 상반기 상위권을 지키며 기분 좋은 질주를 이어갔다.

롯데가 이기는 날이면 은진의 텐션도 함께 높아졌다.

그런데 롯데가 어제까지 9연패에 빠지면서 우울해진 은진이다.


응원하는 팀의 연패는 팬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하루의 기분까지 덩달아 가라앉는다.

나도 한 때 야구장, 농구장, 배구장을 열심히 쫓아다녀봤기에 그 기분을 잘 안다.

은진이는 "나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안 그래도 빡치는데 롯데까지 이러니까 너무 힘들다."라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롯데가 9연패를 당한 것은 2005년 6월 이후 20년 만이다.

그리고 만약 오늘 경기에서도 진다면 23년 만에 10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롯데는 LG와의 원정 경기에서 7회 초 3:3으로 비기고 있다.)

은진이는 분명 지금도 TV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화면 속 경기에 몰입해 소리를 지르고, 안타가 나오면 환호하다가, 또 실책이 나오면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예전에 은진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넌 왜 그렇게까지 야구가 좋아?"

"야구 보고 있으면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 하루 종일 쌓였던 게 싹 날아가서 다시 버틸 힘이 생겨."




우리 인생에도 이런 '야구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그게 음악일 수도 있고, 여행, 글쓰기, 그림 같은 취미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이 가수나 배우, 또는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이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커리어 코칭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일이 너무 힘든데, 어떻게 버텨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동기부여'나 '목표'라는 정답을 찾으려 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오래 버티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작고 사적인 좋아함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금세 회복할 수 있는 힘.

이 힘은 거창한 성취보다 사소한 기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야구 경기를 보며 목청껏 소리 지르는 순간,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듣는 순간,

글 한 줄을 쓰며 마음을 풀어내는 순간.

이런 경험이 우리 마음의 에너지 창고를 채운다.


반대로 좋아하는 게 사라진 삶을 떠올려보자.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성과를 내도 삶이 무채색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국 커리어를 지속하게 하는 건 숫자나 직함이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작은 즐거움이다.


은진이 9연패에도 자리를 지키며 끝내 목이 쉬도록 외친 것처럼,

우리도 각자 '좋아하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 마음이야말로 버거운 일상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에너지다.

삶이 힘겹다고 느껴질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건 어쩌면 대단한 성취가 아닐지도 모른다.

성과도, 타이틀도 아닌, 그저 좋아하는 마음.

은진이는 승패에 관계없이 야구를 보며 또 버틸 힘을 얻 될 거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은 8회 말.

롯데가 5:3으로 지고 있다.

또다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은진이가 생각난다.

제발 오늘은... 마지막에 우리 은진이가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만의 '야구장'을 꼭 찾아서록 힘든 날이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의 질문*
: 당신의 '야구장'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를 때,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또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 '다시 버틸 힘'을 얻습니다.
그 순간에는 복잡한 계산도, 끝없는 비교도, 억눌린 감정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죠.
회복탄력성은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다시 숨 쉬게 하고,
내일을 견뎌낼 힘을 주는 그 작은 즐거움.
그게 바로 당신만의 '야구장'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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