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을 말로 건네는 연습
지난 월요일,
드디어 아들이 개학을 했다.
(야호! 돌밥돌밥 끝~~^^)
아들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꼭 아침에 샤워를 한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도 그렇고, 운동회나 학예회처럼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나간다.
나름 자신만의 의식 같은 거다.
깨끗하게 목욕재계로 하루를 시작하면 뭔가 다 잘 풀릴 것 같은 믿음이랄까?
개학 역시 아이에게는 나름의 '이벤트'였던 모양이다.
"엄마,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서 씻고 갈게."
사실 요즘처럼 아침 기온이 영하일 때는 차가운 타일 바닥과 서늘한 욕실 공기가 샤워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개학날 아침.
아들 폰의 알람소리가 들리기에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미리 조금 틀어두었다.
안에 김이 차오르며 욕실이 서서히 데워지길 바라며...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했다.
"아~~ 진짜 개운하다.
엄마가 미리 욕실 따뜻하게 데워줘서 하나도 안 춥고 진짜 개운하게 잘 씻었어. 고마워."
순간 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사실 생색낼 마음은 없었다.
그저 추운 아침이니까 아이가 좀 덜 움츠러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내가 자신을 위해 미리 움직였다는 사실,
그 '배려의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내 감사 인사를 했다.
사실 인간관계의 균열은 대개 아주 사소한 '당연함'에서 시작된다.
"엄마니까 당연히 해줘야지."
"가족인데 당연한 거 아냐?"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이런 말들이 쌓일수록 누군가의 수고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애써 한 일도, 마음을 써준 순간도 어느새 무채색이 된다.
그런데 아들은 달랐다.
당연해 보이는 일상 뒤에 숨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발견할 줄 안다.
그리고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자기가 느낀 걸 자기 말로 꺼내어 상대에게 다시 돌려준다.
코칭에서는 이런 걸
'관찰에 기반한 인정(Observation-based Recognition)'이라고 부른다.
대단한 칭찬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보고 그로 인해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전하는 것.
상대가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감사는,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한다.
그날 아침, 아들이 건넨 그 짧은 문장은
나를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라 '존중받는 배려자'로 만들어줬다.
그래서였을까.
욕실의 수증기는 금방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온기는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 머물렀다.
아들은 평소에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표현을 자주 하는 아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약간은 과장되게 받아주려고 하는 편이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고맙다고 전할 줄 아는 마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솔직함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건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존중받아본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다.
이 아이가 앞으로도 계속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고마울 땐 고맙다고,
사랑할 땐 사랑한다고
말로 꺼낼 줄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나 역시 그 말들을 대충 받아넘기지 않는 어른으로 이 아이 곁에 있고 싶다.
아이의 말 한마디 속에 담긴 마음을 놓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잘 받아주는 엄마로.
*부모마음 처방전*
1. 아이의 '고마워'는 관찰력의 결과입니다.
아이가 감사를 표현할 때, 단순히 예의 바른 행동으로만 보지 마세요.
그것은 부모의 수고로움을 세심하게 알아차린 아이의 관찰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가 구체적인 상황을 짚어 고마움을 전한다면, 이렇게 응답해 보세요.
"네가 엄마 마음을 알아줘서 엄마도 정말 기뻐"
그 순간, 아이의 관찰력은 자연스럽게 '공감 능력'으로 자라납니다.
2. 당연한 배려 뒤에 숨은 '이유'를 가끔은 들려주세요.
아이들은 부모가 해주는 일들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네가 추울까 봐 미리 준비해 봤어"라고 부모의 마음을 가볍게 이야기해 주세요.
이건 생색이 아니라, 아이에게 '타인의 배려를 읽어내는 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가이드가 됩니다.
3. 감사를 표현하는 아이는 '효능감'이 높은 아이로 자랍니다.
고마움을 전했고, 그 말로 누군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나도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강력한 자기 효능감을 갖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사를 기쁘게 받아줄 때,
아이는 사랑받는 존재에서 사랑을 건넬 줄 아는 존재로 한걸음 더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