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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난 상남자니까...

고집과 걱정 사이

by 커리어포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와 달리, 아들은 더위를 많이 탄다.

조금만 더워도 땀범벅이 되어버리는 아들은 지금도 밤에 잘 때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틀고 잔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아들을 깨우러 방에 들어가면 문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아들, 오늘도 반바지 입을 거야?"

"응..."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는데... 긴바지 입는 게 낫지 않을까?"

"괜찮아. 난 상남자니까..."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녀석이 '상남자' 타령이라니...


며칠 안 있으면 11월이다.

그런데 아들은 아직도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다닌다.

그나마 지난주부터는 겉옷 하나를 챙기긴 했지만 그것도 아침 등굣길에만 잠깐 걸칠 뿐, 집에 올 때면 늘 가방 속에 고이 들어가 있다.

평소 감기에 자주 걸리고, 한번 걸렸다 하면 온갖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돼 입원까지 한 적도 여러 번이라 혹시나 겨울 시작도 전에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오늘도 반바지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요즘 들어 부쩍, 나와 논쟁하려 드는 아들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그냥 '말대꾸'다.

"친구들은 다~~"로 시작하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친구들은 다 반바지 입어."

"친구들은 다 pc방 가."

"친구들은 다 밖에서 저녁 사 먹는데..."

"친구들은 다 밤 12시 넘어서까지도 게임해."


그 '친구들은 다~~'라는 말이 요즘 내 인내심을 시험한다.

결국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그래서 넌 친구들 하는 건 다 따라 할 거야? 니가 따라쟁이야?"

"따라쟁이가 아니라 내 생각을 얘기하는 거지. 친구들이 하는 거 나도 하고 싶다고."

'한번 해보자는 거지?'

명색이 입으로 먹고사는 엄마에게 말싸움으로 이겨보겠다고?

어림도 없지...

이후에도 몇 번의 주고받음 끝에 말로는 내가 이겼지만 마음으론 지고 있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엄마 말보다 '자기 생각'이 조금 더 중요해지는 시기.


"친구들은 다 반바지 입어."

그 말은 사실

'이 정도 날씨엔 아직 괜찮아, 나를 믿어줘'라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입을 열게 된다.

걱정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한 번 시작되면 끝이 없다.

아들은 지금 내 말이 귀찮을지 몰라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결국 사람은 스스로 겪어보며 배우게 되니까.

찬바람 부는 날, 반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잔뜩 몸을 움츠릴 때쯤

'아, 엄마 말 들을걸...' 하고 살짝 후회하겠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다.

"안 추웠어?"

"응... 별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과 볼이 제법 차가웠다.


나는 재빨리 얼마 전 선물 받은 쌍화차를 한 잔 데웠다.

"혹시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이거 따뜻하게 한 잔 마셔."

아들은 말없이 잔을 받아 한번에 쭉 들이켰다.


고집을 부리며 세상과 맞서는 아이,

그 고집을 걱정으로 감싸며 한 발 물러서야 하는 엄마.

요즘 우리의 하루는 늘 그런 모양새다.


나도 쌍화차를 데워 한 모금 넘겼다.

쌉싸름한 한약 향이 코끝을 스쳤다.

묘하게 진하고, 오래 남는 향이었다.

하루의 걱정이 그 향처럼 천천히 퍼졌다가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아들은 내일도 여전히 반바지를 입을 것이고, 나는 또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 걱정이 의미 없는 잔소리가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엄마의 잔소리가 결국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아들도 알거라 믿는다.


*부모 마음 처방전*

1. 고집은 반항이 아닌 성장의 신호
아이가 의견을 내고 고집을 부리는 건
'이제는 나도 내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 서툰 시도를 억누르기보다, 조금은 지켜봐 주세요.

2. 걱정보다 믿음으로 바라보기
부모의 걱정은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아이는 '신뢰받지 못한다'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걱정을 완전히 멈출 순 없지만,
말 대신 기다려주는 시간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 자라는 법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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