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근육처럼 자란다
"엄마,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일주일 전쯤, 아들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장난감이야?"
"운동하는 거야. 팔에 근육 키우려고..."
요즘 아들은 몸무게 늘리기와 근육 키우기에 푹 빠져 있다.
주변에 부쩍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아진 친구들이 많다.
그 속에서 자신이 조금은 왜소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다음날 바로, 손악력기가 도착했다.
"엄마, 이렇게 쥐고 딱딱 누르는 거야."
시범을 보이는 아들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용돈을 털어 사달라고 한 것이니 열심히 하려나.
그런데 막상 내가 해보니 생각보다 꽤 힘이 들었다.
잠시 후,
"엄마, 여기 만져봐 봐. 나 근육 좀 생긴 것 같지 않아?"
아들이 팔을 내밀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게 그렇게 몇 번 했다고 근육이 바로 생기겠니?'
속으론 웃음이 났지만,
"오... 좀 단단해진 것도 같은데... 계속하면 효과가 있을 거 같아."
그렇게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솔직히 하루이틀 하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직은 매일 밤 열심히다.
자기 전엔 유튜브에서 본 '키 크는 체조'도 꾸준히 따라 한다.
거친 숨을 내쉬며 스트레칭을 하고,
까치발을 들고, 나름의 루틴대로 몸을 움직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가 키우고 싶은 건
어쩌면 팔 근육이나 키가 아니라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고.
살다 보면 저마다 근육을 단련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몸의 힘을 키우고,
누군가는 마음의 힘을 키우려 애쓴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비교라는 바벨이 마음을 짓누르고,
실패라는 중량이 숨을 막히게 하고,
두려움이라는 저항줄이 생각을 잡아끌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결국 몸의 근육이 아니라 마음의 코어 근육이다.
그건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반복해야 단단해지고,
쉬어야 다시 자란다.
몸이 그렇듯, 마음도 꾸준함이라는 루틴으로 단련된다.
"근육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
나는 손악력기를 꼭 쥔 아들을 보며 말했다.
"하루에 조금씩, 꾸준히 해야 힘이 생겨.
그리고 마음도 그래. 자꾸 쓰면 단단해져."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웃었다.
(속으로 무슨 멋진 말을 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럼 내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할수록 그 사랑이 더 단단해지겠네."
"당연하지."
아들이 나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엄마, 사랑해. 이거 사줘서 고마워."
그렇다.
사랑도 근육처럼 자란다.
표현할수록, 나누어줄수록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진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매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화를 삼키는 근육, 기다려주는 근육, 그리고 믿어주는 근육.
마음에도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비교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실패의 무게에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체력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아이들보다 내 마음이 먼저 흔들릴 때가 있다.
다른 아이의 성장을 보며
'왜 우리 아이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이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내 조바심이 앞서서 그 마음을 재촉할 때가 있다.
그럴수록 아이의 속도보다 내 기준이 더 커진다.
결국 아이의 부족함을 보는 눈으로 내 불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조금 더디더라고, 자신의 속도로 자라도록 기다려주는 시선.
부모가 흔들리지 않을 때, 아이의 마음도 단단해진다.
그게 아이가 평생 버틸 수 있는 진짜 '마음의 근육'이다.
아들은 손악력기를 손에 쥐고,
나는 마음의 악력기를 손에 쥔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단단해지는 중이다.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가 '비교' 속에서 느끼는 조급함은 성장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 마음을 불안으로 보지 말고, '자라나고 싶은 의지'로 바라봐 주세요.
2. 아이의 속도보다 부모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느린 것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입니다.
3. 아이의 마음 근육을 키워주는 건 '믿어주는 시선'입니다.
오늘 하루, 아이의 노력을 평가하지 말고 그 마음의 방향을 칭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