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욕구가 자라나는 시기
"엄마, 나 친구들이랑 야구장 가도 돼?"
열흘쯤 됐나.
친구들과 통화하던 아들이 물었다.
"친구들 야구장 간대?"
"응... 저번에도 친구들은 갔다 왔는데 나는 그때 ㅇㅇ(사촌동생) 우리 집에 왔을 때라 못 간다 했거든.
근데 이번 주 일요일에 또 간대."
"근데 넌 야구 잘 모르잖아."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가고 싶어."
야구 룰도 잘 모르고, 응원하는 팀도, 좋아하는 선수도 하나 없는 녀석이 갑자기 직관을 가겠다고 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래전 나의 학창 시절이 겹쳐졌다.
1992년,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어주셨는데 배구 월드리그 경기 중계가 흘러나왔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배구를 잘 몰랐다.
야구는 롯데 자이언츠의 박동희 선수를, 농구는 연세대 이상민 선수를 좋아해서 경기장에 직접 가서 보기도 했지만, 배구는 그때까지 중계방송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 친구들 중 배구 팬이 많았다.
순식간에 버스 안은 응원 소리로 가득 찼고,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두 팔을 흔들며 열심히 환호했다.
그날의 경기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나는 마낙길 선수를 좋아하게 됐고, 친구와 함께 배구장도 여러 번 갔었다.
사실 경기보다 더 나를 끌어당긴 건,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응원하던 그 경험이었다.
스포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를 경기장으로 이끈 건, 바로 그 소속감이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야구 자체가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아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은 그날부터 나와 함께 야구 중계를 보며 경기방식을 공부했고, 응원가도 따라 부르며 연습했다.
며칠 뒤, 아들이 다시 말했다.
"엄마, 친구들이 야구장 가는 날 아침 일찍 간대. 한 다섯 시 반쯤?"
"엥? 새벽에 간다고?"
"응... 사인받으려면 일찍 가야 한대. 선수들 경기장 들어올 때 앞줄에 서 있으면 해 준대. 그래서 전부 유니폼 입고 가서 사인받을 거래. 근데 나는 유니폼이 없는데 어떡하지?"
아들의 눈빛엔 간절함이 묻어났다.
말로는 못 가는 친구 옷이라도 빌려야겠다고 했지만, 표정만큼은 '나도 꼭 내 유니폼을 입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왕 가는 거 한 벌 사 줄까 싶어 가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게 6만 9천 원, 젤 비싼 건 14만 3천 원.
한두 번 입고 말 옷인데 이 돈을 들여야 하나,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며칠 고민을 하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엄마가 5만 원 내줄 테니까 만 9천 원은 니 용돈 보태서 사자."
디자인은 같은데 옷 재질의 차이라길래 젤 저렴한 걸 사서 입혀 보내야겠다 싶었다.
"힝... 친구들은 다 제일 비싼 거 입는데... 내가 용돈 더 보탤 테니까 9만 9천 원짜리라도 사면 안 돼?"
사실 아들은 옷이나 물건에 큰 욕심이 없는 아이였다.
1학년때 고모에게 선물 받은 책가방을 6학년이 될 때까지 메고 다녔다.
디자인이 유치한 것 같아 좀 더 큰 사이즈로 새로 사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사양했다.
필통도 2학년때인가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른 뒤 지금껏 쓰고 있다.
옷이나 신발에 나름 취향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브랜드를 따지거나 무조건 비싼 걸 사달라 조르진 않는다.
그런 아들이 요즘 달라졌다.
"엄마, ㅇㅇ이 자전거가 150만 원 짜리래."
"ㅇㅇ이가 이번에 폰 바꿨는데 아이폰 16 프로 샀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마음은 늘 양쪽으로 흔들린다.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그렇다고 무작정 비싸고 좋은 것만 좇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비교는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자신을 견주며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
그래서 중요한 건 비교심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때로는 비교가 아이 마음을 흔들지만, 그 순간을 성장의 발판으로 바꿔줄 수 있는 건 부모의 시선이다.
물건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걸 아이 스스로 알아차리게 해주는 일.
그게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그럼 일단 엄마랑 같이 매장 가서 입어 보고 고르자."
다음날, 아들과 함께 매장에 들렀다.
디자인별로, 가격별로 하나씩 입어보는데 확실히 가장 비싼 게 젤 좋아 보였다.
핏도 좋고, 색감도 달랐다.
거울 앞에 서서 흡족한 표정을 짓던 아들은 이내 가격표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 이게 마음에 드는데... 너무 비싸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 속엔 '갖고 싶지만 말해도 되나' 하는 망설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결국 지갑을 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유니폼을 품에 꼬옥 안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가 원한 건 비싼 옷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같은 자리에 서고 싶다는, 그 마음이었다.
드디어 경기 날(8월 31일).
아들은 새벽 5시 20분, 해도 뜨기 전 집을 나섰다.
'오늘이 너에겐 오래 기억될 하루겠구나.'
괜히 내 마음이 비장해졌다.
그런데 하늘도 참 무심하지...
오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일기예보에는 하필 경기 시작 무렵 강수량이 가장 많을 거라 했다.
혹시라도 경기가 취소되면 어쩌나,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싶어 종일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경기는 취소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대로 진행됐고, 아이는 비를 맞으며 친구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했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중계방송을 보며 그 모습을 상상했다.
빗속에서 미끄러지듯 뛰는 선수들, 관중석에 가득한 우비의 물결.
화면 속 풍경이 낯설면서도, 그 한가운데 있을 아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공 하나, 스윙 하나에 내 심장도 덩달아 철렁였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 종료.
롯데가 5:1로 이겼다.
화면 속 관중들이 환호하는 순간, 나도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들은 밤 11시가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12명의 선수 사인이 빼곡한 유니폼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아들은 오늘 졸업사진 촬영을 위해 이 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갔다.)
온종일 비를 맞고 응원하느라 지쳤을 텐데, 첫 직관 경기가 승리로 끝난 덕분일까.
빗속에서 낭만을 만끽한 그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행복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나 홀로 다짐했다.
롯데가 가을야구를 하게 된다면 아들과 경기장에서 함께하리라.
나란히 앉아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오래 남을 선물이 될 테니까.
그러니 롯데야, 제발~~~
*부모 마음 처방전*
1. 비교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아이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는 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막으려 하기보다, 그 마음을 먼저 들어주세요.
2. 욕구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을 읽어주세요
아이가 원한 건 유니폼 그 자체보다,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소속의 욕구일 수 있습니다.
물건보다 마음을 먼저 살펴봐 주세요.
3. 가치의 기준을 알려주기
"물건이 네 가치를 정하는 건 아니야"
이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려줄 때, 아이는 비교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힘을 키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