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과 허락 사이
엄마, 나도 PC방 가면 안 돼?
2주쯤 전이었다.
밖에서 놀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모두 PC방에 간다는데, 자기도 가도 되냐고 물었다.
지금껏 PC방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집에서도 컴퓨터를 거의 만져본 적이 없는 아이다.
가서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도 친구들이 다 같이 간다니 그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목소리 사이로 묻어났다.
"이번에 딱 한 번만 갈게. 진짜로... 약속할게."
그 말은 내게 '허락해 달라'는 부탁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내건 규칙이었다.
솔직히 그 말을 온전히 믿진 않았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고 했으니...
그렇지만 본인이 먼저 만든 약속이니, 다녀와서 바로 또 떼를 쓰진 않겠지 싶어 잠시 망설이다 허락했다.
그날 아들은 컴퓨터를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친구들이 하는 게임은 함께하지 못했고, 유튜브 영상만 보다 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난생처음 경험한 PC방이 신세계처럼 느껴졌는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친구들 PC방에 있다는데... 나도 가면 안 돼?"
한동안 잠잠하더니 오늘 또다시 PC방 타령을 했다.
"안돼. 너 학원 숙제 많이 밀려 있잖아. 어제도 밤늦게까지 게임하느라 숙제 안 했잖아."
"에휴... 친구들은 다 PC방 가는데 나만 못 가고... 에휴..."
나 들으란 듯 한숨을 소리 내 쉬어가며 다시 물었다.
"왜 안 돼?"
"너 지난번에 한 번만 간다고 했잖아."
"친구들은 다 가는데..."
"친구들이 다 간다고 해서, 너도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지..."
"나 한 달에 두 번만 가면 안 돼?"
"안 돼."
아들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또다시 한숨을 소리 내 쉬었다.
"에휴... 다른 애들은 맨날 가는데..."
서운함과 답답함이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사실 요즘 들어 집에서도 게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숙제를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방학이라고 친구들은 새벽 2~3시까지도 게임을 한다며, 잘 때까지 폰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던 차였다.
물론 아이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다.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건, 어른에게도 서러운 일이다.
하물며 친구 관계에 예민한 시기의 아이라면 더 그럴 거다.
아들의 말속에 '게임'이라는 단어보다 '친구'라는 단어가 더 크게 울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냥 허락할 수만도 없었다.
게임에 너무 빠져드는 것도 걱정이지만, PC방 특유의 환경도 마음에 걸렸다.
환기되지 않은 공기 속에 뒤섞인 나쁜 냄새들, 어수선한 소음, 어른과 청소년이 뒤섞인 공간에서 오가는 거친 말투들...
그곳이 아이에게 좋은 자극만 줄 리 없었다.
"PC방을 꼭 가고 싶은 이유가 뭐야?"
"친구들이랑 같이 게임하려고..."
"너 컴퓨터로 게임할 줄 모르잖아."
"저번에 갔을 때 조금 배웠어. 그래서 가서 연습해보고 싶어. 그 게임은 핸드폰으로는 못하는 거라서..."
"컴퓨터로 게임만 할 수 있으면 꼭 PC방을 안 가도 되는 거야?"
"근데 우리 집에서는 게임 못하잖아."
"그럼 엄마 노트북에 일단 한번 깔아보자. 게임 이름이 뭐야?"
그렇게 내 노트북에 게임을 설치했다.
아들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어색한지 손가락이 자꾸 엉켰다.
"어... 어... 이거 아니었는데... 아... 왜 안 되지..."
하지만 금세 적응하더니, 노트북이 연결된 모니터 화면으로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듯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버려 둔 뒤 저녁 먹으라고 부르자 아들은 짧게 대답했다.
"잠시만... 이 판만 끝내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안다.
예전에 친구가 아들이 하도 게임만 하길래 화가 나서 전원을 꺼버렸더니,
같이 게임하던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다며 난리를 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임 속 세상은 나 혼자 하는 퍼즐처럼 '저장하고 종료' 버튼을 누르면 되는 곳이 아니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온라인 게임은 도중에 빠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구조란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저녁을 다 차려놓고도 잠시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들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번갈아 두드리며 마지막까지 집중했다.
짧은 탄식과 웃음이 오가고 화면 속 전투가 끝나자
"끝났다. 엄마, 이거 어떻게 꺼?"
노트북을 켜고 끌 줄도 모르는 녀석이 게임이라니...
"게임해 보니까 어때?"
"재밌어. 처음엔 좀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
"너 컴퓨터로 게임하려면 컴퓨터 좀 배워야겠다. 타자 연습도 좀 하고..."
"그럼 나도 노트북 사 줄 거야?"
"아니..."
핸드폰도 모자라 컴퓨터까지 붙들고 게임하는 모습을 봐줄 인내심이 나에겐 없거든...ㅋㅋㅋ
"그럼 이제 PC방은 안 가도 되는 거야?"
"응. 친구들 PC방 가서 할 때, 나는 집에서 하면 되니까."
그러면서도 아들은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다음에 진~~ 짜 꼭 가고 싶은 날이 있으면 한 번만 더 가면 안 돼?"
그 말투가 참 묘했다.
이번엔 '약속'이 아니라 '여지'를 남기는 협상처럼 들렸다.
"글쎄... 너 하는 거 봐서...ㅎㅎ"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의 '요구'뒤에 숨은 '욕구'를 먼저 보세요.
아이가 원하는 행동 자체보다, 그 요청을 하게 된 심리적 이유를 살펴보세요.
그 뒤에는 관계 욕구, 인정 욕구, 호기심 같은 '마음의 필요'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요구를 곧바로 허락하거나 거절하기 전에, 그 마음부터 읽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2. 거절할 때는 이유와 대안을 함께 제시해 주세요.
단호한 거절은 필요하지만, 이유 없이 '안 돼'만 반복하면 반발심이 커집니다.
"지금은 ㅇㅇ때문에 안 되고, 대신 ㅁㅁ는 가능해"처럼
명확한 이유와 실행 가능한 대안을 함께 주세요.
규칙은 지키면서도 아이의 만족감을 일정 부분 채울 수 있습니다.
3. '허용과 제한'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 주세요.
아이에게는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통제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허용과 제한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는 자기 조절력을 배웁니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규칙은 지켜야 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