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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손깍지 끼는 남자

사랑을 품고 태어난 아이

by 커리어포유
할머니, 우리 손잡고 가자. 깍지도 껴야지.


뒤에서 들려온 아들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아들이 시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손깍지를 단단히 낀 채였다.
손가락 사이를 서로 꾹 눌러 맞잡은, 마치 연인처럼 다정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묘하게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내려온 시누이 가족과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장안사 계곡에 들러 오리백숙과 오리불고기로 몸보신을 하고, 계곡물에 발도 담그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저녁엔 어머님 댁 근처에서 회를 먹었다.

오랜만에 점심, 저녁 두 끼 모두 거하게 먹은 날.

소화도 시킬 겸, 다 함께 광안리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앞서 걷기 시작했는데,

아들은 바닷가까지 가는 10분 남짓한 시간 내내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걸었다.

행여 넘어질까 봐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걷던 녀석이, 어느새 할머니보다 키가 더 자라 그 손을 이끌고 있었다.



아들은 원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참 다정한 아이다.

만나면 항상 꼭 안아드리고, 헤어질 땐 "사랑해요"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통화를 마칠 땐 이렇게 말한다.

"제 목소리 듣고 싶을 땐 아무 때나 전화하셔도 돼요."

양가 어른들 댁엔 아들이 쓴 손 편지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다음엔 더 많이 안아드릴게요."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말로, 글로, 몸으로 사랑을 전하는 아이.

이 아이는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을 품고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다정함에도 유효기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쿡 하고 아려온다.

머지않아 이 아이도,

여자친구와 손깍지를 끼고 바닷가를 걷게 될 테지...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사랑해."

"안아줘."

"뽀뽀!"를 외치며 서슴없이 품에 안기는 아들이지만

언젠가는 그 말들을 쑥스럽다며 꾹 눌러 삼키고, 엄마의 품을 슬쩍 피하며 조금씩 멀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래서 더더욱,

지금 이 손길, 지금 이 말 한마디, 지금 이 따뜻한 다정함을 오래도록 마음에 꾹 눌러 저장해두고 싶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아, 내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말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지.'


아이를 키우며,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말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아들의 모습,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그 따뜻함을 볼 때면
그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껏 부모에게 그렇게 따뜻한 딸, 며느리였을까.
아이의 다정한 눈빛은 늘 말해주는 것 같다.

"엄마, 이렇게 사랑하면 돼."

그렇다.
아이는 내가 어떤 딸, 며느리여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따뜻한 스승이다.

결국 부모가 먼저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아이도 세상과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지금, 내 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다.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따라 하는 '거울'입니다.
부모가 어른에게 공손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그 마음을 닮아갑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배우는 것,
말보다 먼저 실천하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최고의 교과서입니다.

2. 지금의 다정함은, 오래 기억될 사랑의 언어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손을 내밀고, 안기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때,
그 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고 마음 깊이 저장해 두세요.
그건 언제나 꺼내볼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따뜻한 기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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