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와 흐름이 만든 ‘들리는 말’의 공식
“선생님, 저는 발표만 하면 청중들이 멍한 표정으로 저를 봐요.
눈은 분명히 저를 보고 있는데...
진짜 ‘듣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프레젠테이션 강의 때 한 교육생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녀는 업무상 발표를 할 기회가 많은데 끝나고 나면 항상 평가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목소리 톤이나 발음, 말투 모두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용을 어떻게 꿰느냐, 어떤 흐름으로 풀어내느냐의 문제였다.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풀어냈느냐’의 문제.
우리는 종종 “나는 분명히 제대로 말했는데 왜 못 알아듣지?”라며 억울해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제대로 말했느냐’가 아니라, ‘들리게 말했느냐’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말의 구조와 흐름이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구조 없이 전달되면 공중에서 흩어진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머릿속에 ‘지도’ 없이 낯선 도시를 헤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말에도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ABC 구조다.
A : Attention - 주목을 끄는 도입
B : Body - 핵심 내용을 담는 전개
C : Closing - 메시지를 명확히 남기는 마무리
한 강연자가 워크숍에서 '팀워크 향상'이라는 주제로 발표한다고 가정해 보자.
Attention : 혹시, 팀워크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 있으신가요?
Body : 우리는 지난 3개월간 세 가지 실험을 통해 팀 내 협업 방식을 테스트했습니다. 그 결과 공유 도구와 피드백 방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Closing : 결국, 팀워크는 ‘기술’보다 ‘관계’가 핵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도입-전개-마무리의 흐름이 명확하면, 청중은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른 구조를 적용할 수도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다음 세 가지 공식이 효과적이다.
1. PREP 구조 – 설득이 필요한 상황에 효과적
Point – Reason – Example – Point
주장 – 이유 – 사례 – 강조
예 : 이 캠페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주장)
우리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고객 참여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이유)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B사는 고객 참여 캠페인을 도입한 후 앱 재방문율이 40% 상승했습니다.(사례)
우리도 바로 지금이 고객과의 접점을 강화할 타이밍입니다.(강조)”
2. FAB 구조 – 무언가를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
Feature – Advantage – Benefit
특징 – 장점 – 혜택
예: 이 제품은 AI 기반으로 작동해요.(특징).
그래서 정확도가 높고(장점),
사용자는 손쉽게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혜택)
3. 스토리텔링 구조 – 공감과 몰입을 끌어낼 때
상황 – 문제 – 전환 – 메시지
(기승전결 기반의 감정 흐름 강조)
예 : 한 달 전, 저희 팀은 고객사 납기일을 맞추지 못했습니다.(상황)
문제는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인해 일정이 지연됐다는 점이었습니다.(문제)
이후 우리는 슬랙과 구글캘린더를 연동해 정보 흐름을 개선했습니다.(전환)
이 발표의 핵심은, 일정 관리는 도구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점입니다.(메시지)
이처럼 상황에 맞는 구조를 갖추면, 청중은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하다 보면 발표 피드백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얼마 전에는 교육공무원들의 분임조 발표 영상을 피드백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영상 속 한 발표자는 분명 준비를 많이 한 듯 보였다.
슬라이드도 깔끔했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표가 끝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발표의 흐름이 없었던 것이다.
슬라이드마다 따로 노는 듯한 정보들, 각 문장의 전환이 매끄럽지 않은 설명, 무엇보다도 발표자가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에 대한 맥락이 부족했다.
구조는 논리를 세우지만, 감정을 움직이는 건 흐름이다.
말의 흐름이란 단순히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게 아니라, 청중의 감정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가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흐름이 생기면, 발표자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청중의 마음에 ‘잔상’을 남긴다.
아무리 구조가 탄탄해도 그 첫 단추인 도입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면 흐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도입은 청중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자, 말의 흐름을 타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라도 첫 문장이 밋밋하거나 맥이 빠지면 청중은 금세 집중을 잃는다.
도입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청중의 감정과 주의를 끌어당기는 ‘진입문’이다.
도입이 좋은 발표는 흐름이 탄력을 받고, 도입이 약한 발표는 구조 자체가 흔들린다.
“이 발표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말 한마디,
“나도 저런 경험 있었는데…”라고 마음을 여는 질문 한 줄이 발표의 흐름 전체를 바꿔놓는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요...”
혹시 이런 말로 발표를 시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장 이렇게 바꿔보라.
“혹시, 이런 고민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청중은 '정보'보다 ‘나와 연결된 이야기’에 더 귀를 연다.
스피치에는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1. 기(起): 감정의 문을 여는 시작
“요즘, 이런 고민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발표는 항상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자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기(起)는 말의 시작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청중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공감을 부르는 질문, 낯익은 장면 묘사, 혹은 진솔한 고백...
그 어떤 방식이든, 청중이 “어? 내 이야기인가?” 싶어야 한다.
2. 승(承): 몰입과 감정의 파동을 만드는 시간
이제 청중의 감정선을 따라,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는 흐름이 이어진다.
통계나 사례를 무조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처럼 변화, 갈등, 반전이 있어야 한다.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며,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시간.
이 승(承)의 과정이 잘 짜이면, 발표는 정보를 넘어서 경험이 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몰입이 생긴다.
3. 전(轉): 메시지의 전환점, 관점을 흔드는 순간
발표의 전환점은 단순한 요약이 아니다.
이야기를 통해 끌어올린 감정선을 하나의 메시지로 응축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본질은 정말 이것일까?”
전(轉)은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다.
정보를 정리하고 해석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것이다.
청중이 이 전환의 순간을 지나면, 그전까지의 말이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
4. 결(結): 생각이 머무는 여운, 마음에 남는 말
마지막은 언제나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닫아야 한다.
“이제 아셨죠?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가 아니라,
“그 변화의 시작이 바로, 당신의 말 한마디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결(結)은 끝이 아니라 여운의 시작이다.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당신의 말 한 문장이 그들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 떠돌 수 있도록...
그 말이 하루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어쩌면 그 사람의 삶의 방향까지도 바꿀 수 있도록...
기-승-전-결, 이건 단지 이야기의 구성이 아니다.
좋은 발표가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이자, 설득의 동선이다.
말은 정보로 설득하지 않는다.
흐름으로 설득하고, 감정으로 연결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바로 지금 당신의 발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들리는 말’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나만의 구조를 갖고, 흐름을 설계하고, 진심을 얹는 것.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청중은 비로소 듣고, 이해하고, 움직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