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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Dec 06. 2020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는 나무

늦은 밤 퇴근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났지만, 오늘까지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실내에서 모니터와 마주하고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잠깐 굽은 어깨를 펴고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한다.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고 실내에만 있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맡으니 겨울 바닷바람이 간절해진다.  트인 바닷가 앞에서 파도와 함께 불어오는  공기가 그립다.

지도를 열고 강릉을 찍는다.  찾기 버튼을 누르니 예상 소요 시간 3시간 30분으로 나온다.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 전에는 도착할  있을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겠지만 잠깐의 휴식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잠깐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이내 포기해버린다. 아직 해야 하는 일도 남았고,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일들을 제쳐두고 떠날 수는 없다. 일상을 뒤로하고 무작정 짐을 챙겨 떠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에서 떠도는 여행자도 길을 떠나려면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갑자기 쓸쓸한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 졌을까? 차가운 바깥공기 때문이었나? 생각이 번져 나가다 멈춘 곳에서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바다가 보고 싶어진게 아니라 좁아터진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위해 떠올려낸 장소가 ‘바다라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욕구를 채워줄  있을  같은, 무거워진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있을  같은,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같은 든든한 장소가 바로 ‘바다.

모니터에 열려 있는 수많은  중에서 가장 닫기 아쉬운 창이 지고 내가 보고 있는 지도 창인 것만 같다. 3시간 반도 마음껏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는 창을 닫는다.


옛날 사람들은 비밀이 있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골라
구멍을  다음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고
흙으로  구멍을 메웠다더군
그러면  비밀은 영원히 묻혀지는 거지

영화 2046


정확하게 무엇이 답답한지 모르겠지만  힘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털어놓을  없는 무거운 비밀이 있는 것처럼.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전설처럼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릴  있는 나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에 작은 구멍을 파고, 마음속 짐을 모두 털어놓고는 흙으로 묻어버릴  있다면 쓸쓸한 겨울 바다는 더는 찾지 않아도   같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괜시리 머리가 복잡해진다.   해도 너무 빨리 달려오기만   아닌가? 서두르다가 혹시 놓쳐버린 것은 없었나? 소중한 것들과 너무 거리를 두진 않았는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아닐까? 하는 물음들이 떠오른다.

 한 해도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 투성이다. 무엇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서두른  같아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가끔은 잠깐 쉬어갈 수도 있고 제자리가 멈췄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가슴 졸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게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올해 달력도 이제 마지막  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려 한다. 별로 달라진  없는데 시간만 지나간  같아 불안하다.  이렇게  해가 지나가면 나이도   먹을 테고 처음 맞는 나이로  해를 보내야 한다.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되겠지? 일상이 생각만큼 빠르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연히 마주한  편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스스로 충분히 느리게 걷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숨이  줄도 모르고 달려오기만   같아  자신에게 애잔함을 느낀다. 새해에는, 아니 오늘부터 생각을, 걸음을, 일상을, 식사를, 커피 마시는 속도를 줄여야겠다. 새해 다짐과 계획은 이미  세웠다.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할 때에는 바닷바람을 찾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느리게 춤추라

회전목마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  있는가.
아니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기울인  있는가.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뒤따라간 적은,
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지켜본 적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앞으로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아이에게 말한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속도를 늦추고,
음악에  기울이라.
노래가 끝나기 전에.

-데이비드 L. 웨더포드

데이비드 웨더포드 〈더 느리게 춤추라〉 낭송 _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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