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지난주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다녀왔다. 스스로 안정기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진료를 받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는 않았다. 중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우울증 극복을 위해 실천하기로 했던 것들은 잘 되고 있나요?"
순간 머릿속이 하예졌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내가 뭘 실천한다고 했었지?
"제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었죠?"
"운동도 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것들을 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기록은 해 놓지 않아서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네요."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고작 두 달 만에,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실천하기로 했던 것들을 벌써 잊어버리고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질환들은 약만 잘 챙겨 먹는다고 쉽게 호전되는 병은 아니다. 나의 어떤 점이 우울증에 취약한지를 분석하고 운동을 통해 근육을 기르듯 나의 마음을 조금씩 단련해 나가고, 잘못된 생활 습관이 있었다면 고쳐 나가고,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재발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의 면담을 기회로 내가 다짐했던 일들을 다시 복기해 본다.
1. 운동하기 - 12월에는 무릎이 아파서, 1월에는 추운 날이 많아서 충분히 실천하지 못했다.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웨이트보다는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선호하는데, 운동을 하면 바로 스마트폰 어플에 그날 달린 거리와 시간을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그 달의 운동량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작년에 평균 월 43.5km를 달렸는데 이번 달은 31km가 기록되어 있다. 적어도 세 번은 운동을 덜 갔고, 이번 달에는 설날이 있었으니까 대략 1주일에 한 번은 운동을 생략한 샘이다.
2. 절주 - 처음 단약에 실패하고 한 달 동안은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는데, 설날에 가족들을 만나면서 결국 금주 결심이 많이 흔들렸다. 처음 한 달은 거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나름 쉽게 금주에 성공하나 싶었다. 하지만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퇴근길에 운전을 하고 있으면 저녁식사와 함께 반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격언 중 '한 잔은 너무 많고 만 잔은 너무 적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 하루만 마셔야지가 벌써 여러 번 반복되 왔다. 다시금 금주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3. 견과류와 마그네슘 챙겨 먹기 - 심한 불안 증상에 시달리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견과류와 마그네슘이 뇌의 신경활성도와 불안을 감소시키는 GABA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는 글을 읽고 먹기 시작했다. 견과류 먹기는 그나마 아침에 허기가 지고, 견과류는 맛있기 때문에 잘 실천하고 있지만 마그네슘은 빼먹는 날이 많다. 영양제, 건강보조식품이 다들 그렇든 먹는다고 바로 효과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아무리 홍삼을 먹어도 효과를 못 보는 편이다) 요즘은 이직을 앞두고 다음에는 어떤 곳에서 일하게 될지 자주 불안한 감정이 드는데, 마그네슘을 잘 챙겨 먹는 습관이 들도록 노력해야겠다.
4. 명상하기 - 거의 안 했다.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거금(이라고 해봐야 5만 원 남짓이지만)을 주고 구독한 명상 앱이 눈에 걸리지만 막상 손이 잘 가지는 않는다. 다른 일들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명상은 정말이지 매일 하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잘하지 않게 된다. 유튜브에서 부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어떤 피부과 의사가 나왔는데 자신은 매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걱정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명상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나도 다시 실천해 보려고 한다.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와이프도 읽고 있다. 혹시나 내가 또 해이한 모습을 보인다면 나를 따끔하게 꾸짖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