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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17. 2024

소금 좀 주세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다. 아마 네 살에서 다섯 살 무렵쯤이었을 거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나는 걸 보면 꽤나 강렬한 경험이었나 보다. 전날 물을 많이 마시고 잔 건지 아님 화장실 가는 꿈을 꿨는지는 몰라도 내가 그린 노오란 얼룩을 발견하고 느꼈던 당혹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오줌을 싼 것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엄마가 준 벌칙이었다. 


“오줌 쌌네! 그럼 소금 얻어와야지.”


네 살배기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오줌을 쌌는데 소금을 왜 얻어오지? 엄마는 곧 어디선가 처음 보는 물건을 꺼내 내밀었다.


“자, 이거 쓰고 가는 거야.”


그 물건의 이름은 ‘키’였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도구이다.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데 쓰던 농기구가 80년대 중반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집에 왜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 쓰임이 있었으리라. 할머니나 엄마가 곡식을 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으니 어린 나를 벌주는데 쓰려고 일부러 보관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일생 처음으로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오는 벌을 받게 되었다.


 머리에 얹힌 매끈한 대쪽의 감각은 창피함 그 자체였다. 내복 바람에 엉거주춤 키를  쓰고 바가지 하나를 든 채 차가운 계단을 내려갔다. 엄마는 아랫집 문을 두드렸고 이내 문이 열렸다.


“오메 니 오줌 쌌는가 보네! 따라온나.”


키를 쓰고 울상인 내 모습을 대번에 알아본 아주머니는 앞장서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쭈뼛거리며 따라 내려간 지하실은 창문 하나로 들어오는 햇살과 먼지로 부옜다. 온갖 잡동사니들 한가운데 여러 개의 장독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중 하나의 장독을 연 뒤에 굵은소금을 푹 퍼서 내 바가지 안에 담았다.


“니 이제 오줌 절대로 싸면 안 된다. 알았제?”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는지 감사합니다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고개는 끄덕였을 것이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지도를 그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정말로 크게 벌주려고 했던 건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과정을 재미있어하고 있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으니까. 엄마에게 나는 첫 딸, 첫아기였고 어른들로부터 이 우스꽝스러운 전통을 전수받아 언젠가 해 볼 날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을 수도 있다. 마침내 아이가 지도를 그렸고 옳다구나! 하며 보관해 둔 키를 키득거리며 꺼냈으리라. 소금을 퍼주던 아주머니는 엄하게 말하면서도 묘하게 웃고 있었다. 미션을 완수하고 집에 돌아온 나를 본 어른들도 즐거워 보였다. 아마 엄마도 내 뒤에서 줄곧 미소 짓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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