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의 어린 시절은 참 어렵고 힘들었다. 대한민국의 7,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어른들의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직접 들은 일화를 떠올리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 건지 죄송스러울 지경이다. 그래도 쿨하고 위트 있던 엄마는 궁핍했던 시절마저 우스갯소리로 승화시켜 들려주곤 했다.
한창 직장에 다니던 때, 엄마는 아끼던 실크 스카프를 하나를 서랍에 보관해 두었다. 형편상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나 있던 스카프를 겨울 동안 넣어두었다가 간절기 봄에 착용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서랍을 열었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딱 열었는데 글쎄 거기 뭐가 있었게? 털도 없는 새끼 쥐들이 꼬물거리고 있지 뭐야!”
“으악! 스카프에 쥐라니요!”
추측은 이랬다. 겨우내 허름한 집에 암컷 쥐가 입성했다. 새끼를 낳을만한 가장 따뜻한 공간을 찾아다녔고 하필 발견한 것이 귀한 스카프였다는 것.
“새끼 깔만한 데를 찾다 찾다 거기까지 온 거지 뭐.”
엄마는 그럴 만도 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같은 엄마로서 동질감이라도 느낀 걸까. 졸지에 둥지가 되어버린 스카프는 어찌했는지 여쭤보니 쥐들과 함께 내다 버렸다 했다. 전국 쥐 잡기 운동이 벌어졌던 그때, 아무리 그것들이 딱해도 쥐는 쥐니까 말이다.
엄마가 아끼던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샌들이었다. 여유롭지 못했던 처녀 시절, 여름 샌들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신으려고 보니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그때 집에 개가 한 마리 있었거든? 그놈이 내 샌들을 물고 뜯고 난리를 쳐놓은 거야.”
엄마는 너무 화가 났지만 멋모르는 짐승이 그런 것에 아무 탓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모은 돈을 털어 새 샌들을 구입했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기껏 새로 샀는데 그걸 또 망가뜨렸단다.”
같은 놈이 새것을 또 물어놓은 것이다. 엄마의 눈빛에 스친 체념과 회한이 삼십 년을 뛰어넘어 나에게 전달되었다. 하릴없이 자신의 부주의함을 탓하며 한동안 유니폼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신발을 신고 그 여름을 버텼다.
젊은 날의 결핍 때문일까, 엄마의 장롱과 신발장에는 스카프와 신발이 빼곡했다. 우리 집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엄마는 곧잘 쇼핑을 하곤 했는데 그래봐야 켤레에 삼천 원이나 오천 원, 많이 줘봐야 이만 원이 결코 넘지 않는 신발들을 용케도 찾아오곤 했다. 스카프는 거의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이거 봐라 요거 얼마 주고 샀게?”
“음...... 팔천 원?”
“땡! 삼천원짜리지롱!”설마 오천 원은 넘겠지 싶은 신발마저도 헐값에 들고 왔다.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던 엄마의 기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마지막까지 살다 가신 집의 신발장이 굉장히 컸는데 엄마 신발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발이 작아서 맞는 사이즈를 찾기도 어려운데 저렴하기까지 한 물건을 찾으면 사족을 못 쓰셨던 우리 엄마, 조금 더 오래 살다 가셨으면 좋아하던 거 잔뜩 사드렸을 텐데. 다 큰 딸로서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