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20년도 더 된 기억인 것 같은데, 대체 왜 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조금만 상세히 떠올리는 것 만으로 눈물을 흘린다.
만으로 37세인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이었던 시절. 저녁시간 집에는 나와 아빠뿐이었다. 내가 동생이랑 싸웠던 건가 아빠의 말에 감히 '거역'을 했던 건가. 뭔가 말다툼이 있었고 압력기 밸브의 수치가 올라가듯 아빠의 분노가 치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손에 매를 들었다. 내 기억에는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어떤 몽둥이 같은 것으로 때렸던 것 같다. 나름 나도 '딸'이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군대식으로 때렸을까. 아빠는 현역도 아니고 방위였는데.
아빠는 블루 칼라 계통의,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당시 30대였던 아빠의 신체 능력은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어린애를 패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결국 더는 맞지 못하겠어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내가 방으로 도망간 것이 아빠의 화를 더 부추겼던지 아빠는 기어이 방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당시 방문은 100% 막혀있는 일반 방문이 아니라 상단에 유리가 데코로 들어가 있는 스타일의 방문이었는데 그 유리를 부수고 문고리를 따고 들어왔다.
그때 내가 느낀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짝 엎드려 '살려달라'라고 비는 것뿐이었다.
살려달라니. 부모에게 자식이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닐까.
대학에 들어간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약간의 영화기법에 대해 배웠는데 당시 아빠가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로우앵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화면구성으로 로우앵글을 쓰게 되면 피사체의 권위, 힘을 강조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의 내가 느꼈던 것이 아빠의 압도적인 힘이었기에 나는 로우앵글이 무엇인지 절대로 까먹을 수 없게 되었다.
로우앵글로 올려다본 아빠는 살인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수한 분노였다. 순수하게 분노한 얼굴로 자식을 죽일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간곡히 빌며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고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고 나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바닥에 쓰러져 엉엉 울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밤늦게 일에서 돌아온 엄마가 멍투성이가 된 허벅지에 후시딘을 발라주며 '그러게 대체 왜 아빠한테 대들었어'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 이전에도 많이 맞았다. 아빠는 손에 무엇이 잡히건 그걸 잡고 그대로 때렸다. 커튼 봉으로 맞으면 머리가 '딩-' 하고 울린다는 것도 그래서 배웠다.
하지만 이 날, 아빠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날의 폭력은 무언가 달랐다. 아빠가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에서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다. 이후 나의 세상은 영원히 변했고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체 아빠는 왜 그 정도로 화가 났을까. 찬란히 빛났어야 할 나의 10대는 왜 아빠의 폭력에 대한 기억만이 남게 된 것일까.
어떤 식으로든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지만, 당시의 나는 모범생이었다. 사고 한 번 친 적 없이 공부만 했다. 다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살이찌고 못생겨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아빠는 나를 보고 싫어진 것이었을까? 당신의 기억속 밝게 웃던 귀엽고 작은 아이가 보기 싫어져서?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