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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4캔 대신 음료 4캔

#불안

by 송송당

요즘도 보면 편의점에는 4캔에 얼마 한다는 맥주가 꾸러미로 쌓여 있다.


라떼는(2년 전) 4캔에 만 원이 국룰이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맥주나 술 코너를 아예 지나치기 때문이다.


이번 주 금요일이었다.


바쁘게 하루 일상을 끝내고 정적이 찾아오는 저녁, 푹 쉬면서 OTT로 영화나 보고 싶었다.


이럴 때가 더 위험하다.


이럴 때 술 생각이 난다.


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집 앞 3분 거리에 있다.


슬리퍼를 끌고 슬렁슬렁 그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국산 맥주는 4캔에 8,800원에 팔고 있었지만 나는 그 대신 4캔에 8,000원짜리 제로 탄산음료를 집어 들었다.


용량은 한 캔에 500ml.



음료를 들고 와서 나름 술인양, 예쁜 유리잔에 담아 마시는데 한 캔을 마시고는 배가 불러서 더 마시지 못했다.


아, 예전에는 어떻게 500ml짜리 맥주 4캔을 마시고도 술을 더 마셨던 거지?


헛웃음이 났다.


술을 한창 마시던 때의 나는 거의 먹방을 찍는 사람처럼 술을 마셔댔던 걸까?


보통 500ml짜리 맥주 4캔이 모자라서 소주 같은 것을 한 두 병 더 마셨으니 말 다했다.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불안함이 올라왔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며 나에게 넌지시 위로를 건넸다.


벌써 2년도 더 된 일이지만 2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건 아직 마주하기 어려운 일이다.


치앙마이에서 처음으로 공황발작이 오던 날도 맥주를 두 캔 정도 마신 후였다.


그 새벽, 새벽의 적막 속에서 나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오열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지만 엊그제 같기도 하다.


술이라는, 아주 쉽고 편리한 현실도피수단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신경안정제가 필요할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공황발작이 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공활발작이 오지 않은지 1년 정도 되었지만 종종 죽음에 대해 떠올린다.


어떤 과학자는 인간이 살아있는 상태가 더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물체 상태인 것이 더 보편적인 만물의 상태라고 했다.


왜 살아있는지 모르겠는 이 삶, 나는 깨어있는 채로 삶을 마주하고 싶다.


맨 정신으로 깨어있는 것은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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