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많은김자까 Sep 10. 2019

지혜로운 사람이, 예쁜 말을 한다

당시 카톡대화를 삭제해서, 재연한 것임


김자까님은 자까라고해서 생긴 걸로 보나 뭘로 보나 좀 노는 엄마구나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진짜 작가님인 줄 알았어요


한참을 쳐다봤다. 무슨 뜻인지....

말이야 방구야?

직역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설마...(나의 독해가 맞다면, 저이는 참 용감하도다)


애많은김자까는 불특정 다수의 모임이나 친교를 즐기지 않는다.

이 모임이 그랬다.


그럼에도.

한가지 목적으로 모였으니,

이것도 인연이고, 앞으로 몇달은 더 봐야 하는데,

밥이라도 먹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술자리가 급조됐다. 모두 1호 또래의 자녀를 둔 엄마들이었다.

허나 보기와 달리 술을 즐기지도 잘마시지도 못하는데다,

평양정상회담 특집에 추석특집에, (작년)

살인적인 스케줄이 줄줄한 탓에 김자까는 불참했다.

무엇보다 친한 엄마 몇몇이 있었지만,

불특정다수의 모임에 , 술자리였으므로.


그날이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단톡방에선 깨똑깨똑 알림음이 쉴새없 이 울렸고,

'잘 들어갔냐' '오늘 반가웠다 즐거웠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 만들자'

일상적인 인삿말 속에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김자까님은 자까라고해서 생긴 걸로 보나 뭘로 보나 좀 노는 엄마구나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진짜 작가님인 줄 알았어요'


혹시라도 갸우뚱하시는 독자들을 위해,

해석을 해드리자면.

애많은 김자까의 카톡 프로필은 김자까.


'김자까'님은 카톡프로필이 '자까'(잘까?)라고 해서 생긴 걸로 보나 뭘로 보나 좀 노는 엄마구나 생각했는데,

오늘 술자리에서 진짜 방송작가라는 사실을 들었어요.


나의 '김자까' 프로필이, "오늘 누구, 나랑 잘래?"라는 뜻인 줄 알았다는 의미다.

음..........


대체 김자까가 어떻게 생겼길래?

어쩌고 다니길래? 라고 묻거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작가소개'에 있듯, 책연필과 더불어 옷을 좋아하는,

즉 패션에 적잖이 관심이 있는 아줌마이나,

핫팬츠나 오프숄더 블라우스같은 파격적인 노출패션은 지양하며,

비키니는 커녕 원피스 수영복 차림도 남사스러워하는 다소 보수적 성향의 김자까다.


사실, 이런 설명이 굳이 또 왜 필요하겠는가?

설사 노는 엄마라 하더라도, 그녀가 단톡방에서 저렇게 용감하게 지를 말은 아니었다.


정작 용감한 그녀는

나의 직업조차 알지 정도로,

나와 친분이 없다못해,

초면이나 다름 없는 이였다.


잠깐 갈등도 했다.

저걸 확! 엎어? 말어?


단둘의 갠톡이나 독대자리라면,

한마디 아니라, 표창같은 돌직구로 백마디라도 하겠으나.

저 모임은 나나 그녀 말고도 열명이상이나 된데다

나보다 나이많은 언니뻘 학부모들이 대다수였으므로,

참기로 했다. 아니 무시하기로 했다.

내가 저기서 한마디를 거들어봤자,

몇달간 매일 보고 지내야 하는 모임에서

저나 나나 지켜보는 이들이나 모두 어색할 것이므로.


할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

전문용어로는 'x오줌도 못가린다'고 한다.


그녀는 눈치가 없었고, 지혜롭지 않았다.

사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X오줌을 못가리고 한 말이니,)

나의 기분이야 어찌됐든,

그녀는 죄를 짓거나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잠깐 실수를 한 것이다....넘어갈 수도 있다.

지혜롭지 않아, 상대를 생각하거나 배려할 겨를이 없고.

지혜롭지 않아, 예쁜 말이 나오지 않은게다

머리가 나빴던 게다.

(경고!!!)




8월말. 냉방기 없이는 아직 덥다 싶던 어느날

여섯살 5호가 냉동실에 소중하게 얼려두었던 얼음주머니를 가지고 내게 왔다.

(나는 당시 뭔가 마감으로 몹시 바빴다)

"엄마"

"왜"

"이거 가져. 더우니까 이거 팔에 이렇게 대고 일해"

순간 너무 차가워서 화들짝 놀랐다.

뭣보다 다섯번의 출산, 냉방기에 노출되는 여름에는

산후풍 때문에 폭염에도 겨울팔토시를 끼고 지내는 게 일상이라,

얼음주머니의 촉감은 짜증스럽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나는 아이에게 얼음주머니만큼이나 차갑게 말했다.

"너나 가져가. 엄마는 됐어. 그리고 엄마 바빠"

아이는 순간 무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난 달래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방에서 나가는 것 같다 싶더니만, 아이는 뒷걸음질로 돌아와서 나를 빼꼼 내다보고 다시 말했다.
"엄마. 엄마가 '됐다'는 건, 말만으로도 고맙다는 얘기지?"

이런......

그 예쁜 말에, 순간 얼굴이 뜨거우지고, 심장이 찌릿해졌다.

나의 차가운 태도에 무안했을 아이가

다시 돌아와 전하는 '예쁜말' 속에 담긴

아이의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읽혔다.

내가 웃어주니,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엄마 나 엄마 사랑 쪼금만 떼어가도 돼?"

"응"

아이는 신나 달려와서는 내 목을 끌어안고, 엄지와 검지로 뭔가를 떼어내는 시늉을 하더니.

"엄마 바쁜데 미안. 엄마 사랑 쪼금 뗐으니까. 이거 가져가서 엄마 일 끝날때까지 기다릴게"


지혜는 나이가 들어 키가 크는 것처럼

저절로 자라고 성숙해지는 게 아닐게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노력.


지혜로운 사람이 예쁜 말을 한다.



이전 14화 사춘기 아들&갱년기 엄마, 대화의 품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