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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왕성 Aug 26. 2021

단편_여름이었다


여름이었다.


창과 가까운 교실 내 자리에 앉아있으면 매미 우는 소리가 쇠를 깎듯 신경을 깎아나갔다. 이사장이 두둑하게 챙긴 뒷돈으로 해마다 차를 바꾸는 이 사립학교는 한낮이 아니고는 중앙 제어의 에어컨을 잘 틀어주지 않았다. 때문에 창을 닫는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이 여름 매일 매미 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더는 누구의 울음을 듣고 싶지 않았음에도.


시끄럽다. 그치?


그 애는 곳곳에 스크래치가 난 나무 책상에 볼을 붙이고 그렇게 물었다. 채 빠지지 않은 젖살이 밀가루 반죽처럼 눌려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대답을 않고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날개 위에 소복이 먼지가 쌓인 선풍기는 75도 각도 즈음이 되면 같은 극을 만난 자석처럼 빠르게 고개를 한 번 삐걱대고는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거 알아? 매미는 7년을 넘게 땅속에 있다 바깥으로 나오면, 딱 한 달 어른으로 살다가 죽는대.


선율 같은 목소리는 건반 하나가 고장 난 피아노처럼 늘 끝이 탁했다. 대, 하고, 문장과 떨어진 말끝이 교실 바닥 위로 가라앉자 그 애의 속눈썹이 선풍기 바람에 나풀거렸다. 나는 그것을 가만 바라보았다.


땅속에서만 17년을 사는 매미도 있는데, 걔는 이름이 '십 칠 년 매미'래.

알아.

어떻게 아는데?

네가 말해줬잖아.


입꼬리를 트며 웃는 얼굴 위로 오전의 햇살이 물결처럼 아른거렸다. 앞자리에 앉은, 해바라기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은 아이가 나를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그리곤 제 짝지와 얼굴을 붙이고 뭐라 속삭였다.


너랑 얘기하면 안 돼.

왜?

안 되니까.


내 말에 그 애의 입술이 비죽, 일그러졌다. 왜 안 되는데? 끈덕진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심해처럼 파란 칠판만 들여다보았다. 폐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숨쉬기가 어려웠다. 귀가 물에 잠긴 듯 모든 소음이 웅웅거리며 멀어졌다. 오로지 매미 우는 소리만 선명했다.


정오만 되면 학교에선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게 역겨워 매번 운동장을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찰 만큼 달리다 보면 냄새는 어느새 사라졌다. 오늘은 오전부터 날이 흐렸다.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점심이 되자 뇌우가 쳤다. 그게 신호라도 된 양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양철지붕을 얹은 스탠드에 앉아 운동장이 흙탕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양철과 부딪히는 빗방울이 전류가 튀는 것처럼 탁탁거리는 소리를 냈다.


비 오는 거 싫어.


한 손에 들어오는 우유갑을 볼이 패도록 빤 그 애는 빨대를 질겅 씹으며 질린 표정을 했다.


피부에 녹은 솜사탕 달라붙는 느낌. 으, 진짜 싫어.


하복 아래 드러난 흰 팔을 슥슥 쓸며 젓는 고개를 따라 끝이 고르지 않은 단발머리가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찰랑거렸다.


팬티 속이 제일 꿉꿉해. 꼭 덜 마른 팬티 입은 거 같이.


그 애가 몸을 둥글게 말며 킥킥댔다. 붉은 귀 끝이 훤히 드러난 옆모습은 각진 곳 하나 없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완만한 언덕 같은 이마 위로 부스스 잔머리가 흩어졌다. 웃음기가 남은 얼굴은 방금 세수를 마친 것처럼 말갰다.


솔직히 말해. 너 나 좋아하지?

누가 그래.

글쎄, 네 눈이?


내 눈엔 다 보이거든, 하며 휘어지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군가 목에 주먹을 꽂은 것처럼 목 안이 크게 부풀었다.


왜 우니?

누가 운다 그래.

글쎄... 네 눈이?


내 말에 그 애의 표정이 굳었다. 마른 흙처럼, 부드러움을 잃어 갈라지기 시작한 점토처럼.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너는 왜 자꾸 나 찾아오는데?


내 말에 그 애가 신발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뇌우가 번쩍였다. 땅에서 튀어 오른 빗방울이 볼을 적셨다.


너밖에 없으니까.

...

너 그거 왜 모른 척 해?


발치로 파란색 고양이가 그려진 우유갑이 채였다. 겉면에 '초코에몽'이라 적혀있었다. 초코에몽, 나는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부드러운 발음임에도 입안이 까끌했다.


너랑 말하면 안 돼.

왜 안 되는데?


체육복을 입은 여자아이 두 명이 우산도 없이 뛰어 옆을 스쳐 갔다. 저만치 멀어지던 아이 중 한 명이 멈춰서 나를 돌아보았다.


...애들이 들어.

그게 다야?


눈을 마주보기가 힘들어 멀리 시선을 던졌다.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비가 오는 날은 너무 시끄러웠다. 세상은 날 것의 냄새와 함께 저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질러댔다.


비 많이 온다. 조심히 가라.


비가 책망하듯 몸을 때렸다. 그 애도 나를 책망하듯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은 괴괴했다. 습기에 벌어진 나무 틈 사이로 떠드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도 같았다. 시리도록 푸른 형광등이 눈이 부셔 스위치를 껐다. 그러자 매미 우는 소리가 볼륨을 키운 것처럼 크게 들려왔다. 비 오는 날에도 매미가 울던가, 불투명한 창밖을 바라보며 그 울음을 들었다.


미안해.


그 애는 속삭였다. 그리고, 그리고 소리도 없이 울었다. 세상은 온통 시끄럽게 우는데 그 애의 울음만은 무음이었다.


내가 너무 못되게 말했지.


다투고 나면 그 애는 늘 먼저 사과했다. 자기의 모질음을 못 견디겠다는 듯. 그래서 더 모진 나는 그 애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


너 나한테 못되게 군 적 없어.

진짜?


뒷문이 열렸다. 높은 굽의 슬리퍼를 신은 선생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랑 얘기하니?

연의요. 연의랑요.

...장난 치지 말고 얼른 집에 가라.


선생이 멀어졌다. 복도가 울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따뜻했다.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럼 어디로 가야 해?


나도 잘 모르겠어, 숙인 고개 위로 그 애의 손이 얹어졌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너무 가벼워 나무 바닥을 상처 입히지도 못하고 부서졌다.


연의야, 무서워.


자꾸만 겁이 나. 너 없는 세상이. 네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이곳이.


울지마. 나 죽은 지가 언젠데 아직 우니.


그 애가 죽은 1년 전 여름, 매미가 지독히도 울었다. 나는 그 애가 얘기해준 십 칠 년 매미를 떠올렸다. 그 애도 꼭 그만큼을 살다 갔는데, 세상은 그 애의 울음을 듣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갔다.


너 우는 거 못 보겠다.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매미가 여전히 귀가 찢어지도록 울었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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