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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May 02. 2018

‘글씨만 쓸 줄 아는 그저 평범한 옆 집 남자.’

- 책 <쓸 만한 인간> -

  아침부터 운수가 매우 나쁜 날이었다. 오후 시간대에 강의가 있었기에 느긋하게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 평온했던 아침이 소름끼치는 아침이 된 것은 그게 시작이었다. 휴대폰에는 영화표 알림이 와 있었다. 당일 오전 조조영화, 이미 영화는 시작된 후였고 예매취소는 불가했다. 어이가 없어서 잠시 서 있었다. 심지어 가족들과 보려했으니 표 네 개를 공기 중에 뿌린 것이다. 전날 밤, 주말에 볼 조조영화를 예매한답시고 열심히 어플로 예매를 완료를 했다.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였다. 스포 당하기 싫어서 더욱 조급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29일 영화를 예매했어야 했는데 26일 영화를 예매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리고 ‘정신 차리라’는 가족들의 꾸중을 피할 수 없었다. (영화는 결국 다시 예매했다. 그리고 엄청 재밌게 봤다. ‘어벤져스 4’를 애타게 기다린다.)


  원래 생각보다 스스로 허둥거린다는 것을 잘 알아서 계속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어디를 갈 때도 장소를 옮길 때마다 내 소지품을 확인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날 처음 본 사람들은 ‘되게 꼼꼼한가보다’라고 착각을 하신다. 꼼꼼하다기보다 저 자신을 못 믿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그날따라 결제 확인 메일을 확인 안했으니 스스로 한심했다. 수시로 메일을 확인하는 내가 말이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로 향하는데 지갑을 집에 두고나와 다시 집으로 가야 했고, 지하철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놓쳐 8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늦었으니 당연히 강의실까지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었어야 했고, 문과대학은 참으로 정문과 멀었다. 그런데 휴대폰을 보니 충전기가 뽑혀있었던 건지 20%였다. 그래, 이게 마지막이겠거니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기 위해 찜해놓은 가게를 갔더니 브레이크 타임이었으며, 그날 나온 중간고사 점수는 B와 C 사이였다. (이것은 내가 공부를 안 한 탓이겠지만...) 그리고 학교에서 잠시 만나려고 했던 첫째 언니와는 휴대폰이 방전되면서 계속 엇갈리기만 하다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약간은 불운한 하루였으나 책 선정만큼은 탁월한 날이었다.      

  최근 영화인들이 쓴 책들을 소개받았고, 그 안에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이 있었다. 제목을 보고 확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배우 박정민이 쓴 글을 읽고 싶었다. 배우로서 영화 <파수꾼>, <동주> 등에서 마주했던 그가 어떤 글을 쓸 지 궁금했다. (영화 <파수꾼>과 <동주>, 정말 인상 깊은 영화들이었다.)     


  종종 예술계통에 종사를 하시는 분들께서 다양한 재능을 보여줄 때마다 한 편으로는 부럽고, 그들의 재능을 맞이할 수 있어서 기쁘다. ‘글 잘 쓰는 배우’, ‘그림 잘 그리는 가수’, 이처럼 종종 그들의 본업과는 상관없이 예술적 재능을 펼치는 분들을 보면 예술적 영역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작가가 직업이 아닌 분들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작년 봄에는 가수 종현의 소설책 <산하엽>을 읽었다. 참 기억에 남는 책이 됐다. 이러한 분들의 책을 보면 묘한 감수성이 드러나는데, 그게 그렇게도 매력적이고 영감이 된다. 또, 참 진솔하다. 그리고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 도전한 그들에게는 신선함이 깔려 있었다. 그들에게 느끼는 신선함은 내가 그들에게 갖고 있던 편견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일지 모르겠지만 상쾌함이 존재한다. 그들이 원래 갖고 있는 표현의 창구에서 벗어나 ‘글’이라는 창구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허황된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과연, 스스로 잘 알고 그 문장을 썼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문장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말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책은 일종의 자극제가 된다. 나도 어서 글을 써야지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배우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 역시 그랬다. 재치가 넘쳤고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 했다. ‘와, 멋있는 사람이다.’보다 ‘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자신의 찌질함을 표면으로 내세우기도 하니 말이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박수를 쳤다. 도서관이었으니 물론 내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보고 있으면서 얼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드러내는 글을. 요즘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드라마 극본을 쓰든, 내게 글을 쓴다는 행위에서 내가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갖고 있는 상처, 시의 대상, 드라마의 주인공이 가진 성격, 어쩔 수 없이 내가 투영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쓰면서 멈칫 거릴 때가 있다. 이건 내가 가진 어떠한 부분,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가 가장 그렇다. 이렇게 수면 위로 자기 자신을 올려 보내면 인정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에 겪는 두려움일 것이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 내가 했던 잘못들, 그로 인한 죄책감, 숨겨왔던 누군가를 향한 마음들, 그렇게 드러내고 나면 부끄러워질 것만 같다. 또 그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상처를 마주하는 일은 아직도 따갑다. 그래서 아직도 못하고 있지만 평범한 옆 집 남자 박정민이 쓴 <쓸 만한 인간>과 같이 솔직한 에세이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드러내게 된다. 사람 마음이 그런 것 같다. 누군가 자기 자신을 보여주면 나 역시 자기 자신을 보여주게 되는 그런 마음, 나는 자기 자신을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범한 옆 집 남자 박정민은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준다. 잘하고 있다고,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잘 될 거라고, 복 많이 받으라고, 행복하라고, 그의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농담들은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모두 ‘쓸 만한 인간’이라는 그의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들은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나 역시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에게 말을 해주다보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가 주는 것들이 내가 받고 싶은 것이기를.

     

  평범한 옆 집 남자 박정민의 새로운 글을 기대해본다.      


  나는 그의 쓸 만한 글이 더 읽고 싶다.     


+) 책 속에서     


1. ‘새해엔 복 많이 주는 사람이 되길.’

2.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6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3. ‘이미 네가 나한테 복덩이야.’
     당신도 누군가에겐 이미 복덩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4. 모두,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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