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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May 05. 2018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지

-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

  활동하고 있는 문화웹진 ‘아트인사이트’에서 진행된 문화초대로 알게 된 연극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 처음으로 사람들이 웃고 있는 사이에서 홀로 훌쩍이며 울었다. 이 일을 친구에게 전했더니 드라마 <시그널>에서 배우 조진웅이 사랑하던 이를 잃고 코미디 영화 상영관에서 혼자 울고 있던 장면을 언급했다. 딱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내 옆 관객이 웃을 때, 나는 홀로 옆에서 울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주룩, 흘려보냈다. 내가 울고 있는 것이 민망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은 웃고 있어서인지, 밖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극장 안이 어두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기존에 웹진에 기고한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현실, 가난, 불가능

  본 연극의 간단한 플롯을 정리해보자면 '비정규직으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3년 차 부부인 종철과 선미에게 아이가 생기고, 부부는 가난한 현실 상황 속에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둘의 갈등이다. 이 애잔한 상황 속에서 웃고 또 울 수밖에 없었다.


  주로 소극장 연극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보다도 가장 현실에 맞닿아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가장 현실 속에서 벌어지기 쉬운, 아니 많이 벌어졌을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리고 그 현실을 관객들에게 직시하게 한다. 그 가운데서 진짜 그런 현실에 공감하며 웃기도 하고, 그 현실의 중간에 있어서 울기도 한다. 그게 바로 ‘공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감정을 가지는 일, 이는 어떠한 콘텐츠에서도 주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인데 본 연극은 무대 위에 현실을 올려두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많이 웃었고, 또 정말 슬펐다. 

  제3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이슈는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고 최근 조금은 더 나아가려는 시도들이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 역시, ‘저출산 시대’이기에 여러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크게 변화하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 ‘아이’가 주는 가치가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는 현실이다. 경제적인 풍요의 부재는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에 제한을 준다. 연극 속에서 종철과 선미 부부가 경제적인 한계로 인해 아스파라거스가 아니라 구운 파를 가니쉬로 사용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연극 속에서 종철과 선미는 버텨간다. 나름 행복하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면서 그들은 ‘이정도면 충분하지’, ‘이정도면 괜찮아’, 한 달에 한 번은 데이트를 나가는 3년 차 부부인 그들은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 그런 둘의 일상에 ‘아이’가 등장하면서 현실과 이상이 분리가 되는 상황에 도달한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자 선물인 ‘아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불안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는 불안감, 경제적 제한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생각,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에 부부의 행복에 금이 간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선미와 지금은 아이를 낳아봐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종철의 입장은 섬세하게 서술된다.

  선미와 종철은 본 연극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장면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 장면이 제게는 최고의 장면이었고 많이 웃었으며 또 많이 울었다.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선미와 종철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월급, 월세, 생활비, 아이를 낳게 되면 들어갈 비용을 계산하면서 평소 썼던, 그들의 사소하지만 행복했던 곳들에 소비했던 금액들을 삭제한다. 한 달에 한 번씩 갔던 데이트, 간단히 해먹었던 음식들, 화장품, 술, 담배, 인터넷, TV ... 그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소비했던 것들을 다 지워가면서 선미는 눈물을 보인다. 그녀의 눈물에 나는 따라 울었다. 많은 관객들은 그들의 유머 가득한 모습에 웃었고, 나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사소하지만 소중했던 행복들을 포기했음에도 그들은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는 현실에, 그러한 행복을 포기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슬피 우는 선미의 모습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연극 제목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인지 후반부에야 알 수 있었다. 연극의 마지막에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남편이 임신을 한 아내에게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실랑이를 하다 죽이고 자수를 했다는 신문 기사가 등장한다. 또 다른 선미와 종철이 살고 있었던 곳, 결말은 달랐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듦과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겪고 있음이 말해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결말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실제로 선미와 종철이 그 신문기사에 나오는 두 인물이며, 마지막 모습은 그저 행복한 환상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선미와 종철은 계속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환상, 상상, 미래

  연극의 시작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선미는 하와이를 꿈꾼다. 종철도 졸린 와중에 맞장구를 쳐준다. 극 속에서 전반적으로 선미는 낙관적인, 종철은 현실적인 사람으로 묘사가 되는데,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지’라는 대사는 종철이 이야기한다. 극 속에서 환상과 상상을 하며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는 것도 종철이 한다. 현실적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종철이지만 그 안에 갇혀있는 어떠한 욕망,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 유유자적한 휴양지에서 쉴 수 있는 삶, 그런 환상 같은 미래들을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이다. 선미과 종철이 현실 속에서 그래도 본인들만의 사소한 행복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환상들, 상상들에 기반을 두었다.  

  종철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좀 더 현실직시적인 시선으로 보고 환상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 반면, 선미는 그 끈을 놓치지 않는다. 현실이 힘들고 불가능하다고 해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종철을 설득한다.      

  항상 누구나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사람이 가지는 좋은 재능이다. 단순히 ‘환상’이고 ‘상상’이니 ‘허상’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미래는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등장하는 한 대사가 있다. ‘어제를 살아봤다고 해서 오늘을 다 아는 것을 아니니까요.’, 현실을 다 알고 불가능하고 가난하다는 것만으로 다가올 미래를 부정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체성, 나의 역할

  본 연극에서는 정체성, 직업적인 역할, 나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종철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에 자동차 키를 꽂고 출발하는 운전기사가 30명이야.’라고 말하며 종철은 막 설명하려고 애쓴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면 학력이 높아야 하며 공부를 해야 하고, 자기는 그럼 어떤 사람인가를 그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냥 자신이 어떤 사회의 한 부품은 아닐까하는 그런 마음들을 서툴게 표현한다. 그 풀리지 않는 답답함까지도. 이 때, 또 눈물이 났다.     

  나는 이런 생각을 꽤 자주 하는 편이고, 사회에 제 역할,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차츰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했다. 최근 어느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됐다. 그 다큐멘터리 안에서 故 신해철의 강의가 등장했다. ‘우리는 태어난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행복하기만 하면 돼요.’, 이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아찔함을 느꼈다. 굳이 어떠한 역할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기보다 그냥 나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임을 잊고 있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꿈꿀 테니까. (행복의 기준은 개개인이 다르겠지만서도 말이다.) 그런 고민에 힘들어하는 종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본 연극을 관람하고 나서 한동안 그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를 만큼 마음속에, 머릿속에 가득 찼다.      

  부디 모두 행복하길.

  힘든 하루였다면 서로 다가가서 안아줄 수 있길.

  당장 내일 할 일을 걱정하지 않는 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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