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유 <무릎> -
정말 오랫동안 좋아한 아티스트다. 그녀의 음악은 내 학창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특히,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사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말이다. 그녀의 첫 공중파 음악방송을 나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중3이라는 나이를 듣고 엄청 놀랐었다. 정말 빠른 데뷔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점점 더 데뷔하는 연령이 어려지고 있지만 16살이라는 나이는 지금도 어리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모자라고, 미성숙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어린 나이다. 그래서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뮤직뱅크를 보다가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후, 국민 여동생이 되어 돌아온 그녀다.
내게 가수 아이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가사’다. (워낙에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해졌고, 그녀가 대세가 된 이유도 그녀의 노래 실력이 있었으니 그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이유로 그녀의 음악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취미였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휴대폰을 사러 갔을 때, 내 조건은 하나였다. MP3 기능 여부. (그전에는 언니들이 가진 MP3를 야금야금 빌려 음악을 들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 용량이 많지 않아서 항상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나서 음질을 낮춰 용량을 줄이고 휴대폰에 넣었었다. (음질을 낮추다니... 양을 많게 하겠다고 질을 포기했던 과거의 나다.) 그렇게 해도 30곡이 넘게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매주 신곡이 나오면 들어보고 다운로드하고 이전에 있던 곡들 중에 안 듣던 것은 지우고 새로 채워 넣었다.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해 새로운 음악을 넣고 있을 때,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시절은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2008년, 2009년을 모두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이렇게 음악의 애정이 깊은 나에게 저장할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러니 나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골라야 했다. 꽤나 공들였던 작업이었다. 그때 가장 큰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가사가 가장 컸다. 지금도 새로운 노래를 듣게 되면 가사 먼저 본다. 가사가 좋으면 한 번 더 듣게 되는 나다.
이런 나에게 가수 아이유의 가사는 정말 제대로 내 감성을 저격하고 있다. 그녀가 쓴 가사들을 가만히 읽어보고 있으면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쩜 그런 표현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녀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는 일기를 쓰면서 영감을 정리한다고 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가사를 쓸 때, ‘말’이 중요하다고 했다. 가사를 쓸 때, 말을 한다고. 하고자 하는 말을 하면서 풀어낸다고 말이다. 또한 3~4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다 말해야 하니 다 털어내고 알맹이만 남게 되는데 그러니 정말 중요한 말들만 남게 된다고. 그렇게 알맹이만 남은 가사는 부르는 그녀에게도 듣는 나에게도 아주 큰 힘이 된다. (최근에는 다른 가수들의 곡에도 가사를 붙여준다. 정승환, 제휘의 신곡을 들으며 가사를 곱씹는 일이 늘었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넓은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발견한, 그녀가 팬카페에 올렸던 노래, <무릎>의 기타 어쿠스틱 버전은 그녀의 가사에 더욱 빠질 수밖에 없었다. (후에 그녀의 미니앨범 ‘CHAT-SHIRE’에 편곡되어 수록됐다.)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라는 가사에 매번 스스로 지치고 아플 때, 찾아 듣는 노래가 되었다.
(위 링크 버전은 먼저 공개됐던 어쿠스틱 버전이다. 이 버전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한다.)
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느낌’이다. 내가 느끼기에 좋은가, 이게 제일 중요했다. 좀 더 내 감정을 탐구해서 내려가자면 ‘왜 그 가사를 듣고 좋았는가.’란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정말 참신한 가사인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주는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인가.’라는 기준도 존재했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라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나는 그랬다. 그래서 <무릎>의 가사가 참 좋았다. 내가 지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 좋았다.
한 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겹쳐서 매일 밤을 새웠고, 친구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던 적이 있다.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한계를 마주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의견을 듣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맡고 있던 일들을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불은 다 끄고 침대에 누워 자지도 않고 가만히 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 가사를 마주했을 때, 많이 울었다. 그 후로 힘들 때면 슬픈 가사의 노래들을 들으며 가만히 누워있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 한결 나아졌다.
슬플 때, 한 없이 슬퍼지는 것, 그것이 내 슬픔 탈출 방법이 됐다. 솔직하게 내가 슬프고,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다. 현재 내 심리상태를 곧바로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내게 중요했다. ‘괜찮지 않음’에도 자연스레 대답하는 ‘괜찮아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오늘 어떤 하루였는지,
기분 좋은 날이었는지, 우울한 날이었는지,
솔직해보자.
푹 쉬는 밤이 되길.
아이유 <무릎> 가사 中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그대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좋겠어.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 <CHAT-SHIRE> 앨범 소개 중 <무릎> 곡 소개 中
“태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운 법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죠? 새가 알껍데기 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