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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May 16. 2018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 책 <나의 친애하는 적> -

  최근에 정말 생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교대역 근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사무보조, 그것도 정말 보조의 일을 하고 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장소였고, 아르바이트였다. 평생에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곳을 매주 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정말 별일이 다 있다(참 좋은 아르바이트다. 흔히 말하는 ‘꿀 알바’다.)     

  주 1회, 공강인 하루를 통째로 그 법률사무소에 출퇴근하면서 보내고 있는데, 정말 보조의 일인지라 일이 많지 않다. 하루 8시간 동안, 간단한 아침 청소와 적은 설거지, 서류 정리 정도다. (이 일들 중에서 서류 정리를 가장 신경 쓰고 있다. 서류뭉치를 끈으로 묶는 일은 꽤나 정교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전체적인 서류뭉치들이 틀어지고 만다.) 법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더 도와드릴 수도 없어 아쉬울 정도다. 어떻게든 더 도와드리고 싶고 내게 일을 더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근무 첫날부터 말씀하셨듯이 내게 꼭 공부하거나 책을 가져와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8시간, 근무시간 동안 개인적으로 내 일을 하는 시간이 더욱 많다. 

  시험 기간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여서 초반에는 시험공부 위주였지만 사실 공부는 잘 되지 않았고, 시험이 끝난 후부터 책을 읽고 있다. 출근 전날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급히 빌려 근무지로 향했다. 원래 빌리고 싶은 책들이 있었는데, 모두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빌린 책들이 허지웅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 김용택 시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이었다. (이번에는 <나의 친애하는 적>을 다루지만 곧 <그대, 거침없는 사랑>을 다룰 것이다.)     



  허지웅 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처음 접했다. ‘허지웅’이라는 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 방송을 통해서였다. 사실 그의 방송을 많이 본 것이 아니어서 어떠한 이미지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마주하고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이구나.’,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좋은 글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유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겠다.      


  나는 종종 국문과라는 이유로 간단한 글의 첨삭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또는 수업시간이나 친구들이 글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볼 때마다 참 어렵다. 아예 문장을 완성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친구라면 그 문장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주겠으나이미 완성된 문장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서툴고참으로 어렵다이미 그 한 문장 안에 쓴 사람의 생각이 가득 일 텐데내가 함부로 건들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줄 때면, 옆에 앉혀놓고 이 부분은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 썼는지, 그 의미와 관련된 개인의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수정을 해준다. 그만큼 내게 타인의 글을 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내가 평하는 것은 그냥 ‘느낌’이다.(무책임할 수 있겠다. 노력하고 있다. 어떤 점이 좋은 것인지 말하기 위해. 하지만 극본이나 시나리오의 개연성은 꽤나 꼼꼼하게 분석하는 편이다.) 읽어보고 ‘와, 좋다.’는 생각이 들면 그 글은 내게 참 좋은 글이다. ‘여기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해서 함축적인 느낌이 들며, 아주 적절한 표현이고, 이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겠다.’ 이런 것을 모두 알게 된다면 내가 더 좋은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보는 게 나의 가장 큰 노력이다.)      

  이번에 읽은 허지웅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은 읽는 중간중간 내 휴대폰의 무음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그만큼 멈추고 반복해서 곱씹을 문장들이 많았다. 이를 증거로 나는 그의 글이 좋다.     


  나는 글을 읽다가 정말 좋고, 감동하면 눈물이 맺힌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을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이성적인 판단하게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책이었고,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렇게 쉽게 일렁였다ㅡ>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책에서 읽은 두 문장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만나 읽어 내려가며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 공간을 나만의 단서들로 채워나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극장을 나서 깜깜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 같더라. 아직도 그때 맡은 공기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당시의 기분을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이상한 노릇이다.’  


  그의 문장들에 마음이 일렁였고, 또 그가 겪은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들을 보며 나 역시 이러한 기록들을 해놓고 싶어 졌다. 이따금 너무 좋은데그것이 왜 좋은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그럴 때면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먼저 읽으면서 찾아냈다. 얼굴은 모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그분이 찾아낸 그 좋은 부분을 말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속 시원하다는 것과 왜 나는 그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독서를 하고공연을 가고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러한 연습으로 문화웹진에서 활동하며 조금 늘어갔지만 초대가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 방문한 것들에 대한 리뷰들이 필요했다.       



  ‘나는 사람들이 우는 건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울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앞서 다뤘던 책 <쓸 만한 인간>에서 말했던 키워드지만 다시 등장한 키워드는 ‘솔직함’이다. 책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그는 정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또 적절한 표현으로 이야기한다그 모습이 멋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떨 때 가장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이는 내가 얼마나 나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다. 나는 꽤 어릴 적부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나는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오후 3시를 좋아한다. 시외버스를 타면 초콜릿 우유를 빨대로 빨아먹는 일을 즐기다 30분 후에 정확히 잠에 든다. 도서관 창가 자리를 좋아하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정이 많아 누구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음식점을 갈 때, 대부분 ‘아무거나’를 외치는 사람이며, 진짜로 ‘아무거나’다.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한다.      

  간신히 적어 내려가 보니 내가 아는 나는 꽤나 구체적이지만 나름 피상적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들을 좋아할까? 내가 가진 행동 뒤에는 내가 가진 추억들이, 또는 상처들이 가득하겠다. 그를 직면하려는 노력을 나는 하고 있다. 내가 나를 잘 알기 위해서, 그래서 내 중심을 잡고 싶어서 말이다. 나는 마치 혼자 타는 시소 같다오른쪽 위로또 왼쪽 아래로 계속 움직인다시소에서 홀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시소의 중심에 서야 한다나는 그 중심으로 가기 위해 나를 알아보고자 한다이번 글을 계속 쓰면서 더욱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내가 되기를.


하루 끝 (하교하다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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