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포터 시리즈 -
11살이 된 매일, 부엉이를 기다리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이 나처럼 부엉이가 가져다줄 ‘호그와트 입학허가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세계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세계이므로.
나는 우리나라는 스무 살부터 성인이 되니까 13살까지도 기다렸다. ‘아냐, 내가 머글 일리 없어!’ 이러면서. (머글 : 마법사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해리포터 세계관 속 용어) 하지만 끝내 나는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저 독자였고 관객이었다. 그 현실을 깨달으며 나는 중학교를 갔다. 그래도 좋았다. 내게 어린 시절, 꿈꿨던 것을 물었을 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기뻤으니까. 어떠한 한계 없이 꿈꾸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정말 소중하니까.
‘마법’이란 어떠한 한계가 없는 힘을 마주했을 때, 기쁨이란 잊을 수가 없다. 나무젓가락으로 마법 지팡이를 만들어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물건을 공중 위로 띄울 수 있는 주문), 익스펙토 패트로눔(영혼을 빨아먹는 가장 어두운 존재 ‘디멘터’들을 물리칠 수 있는 주문), 루모스 맥시마(불을 켤 수 있는 주문) 등을 외쳐댔다. 그리고 내가 마법사가 아님을 알아도 기억하고 있는 주문들이다. 이는 내가 마법사가 아니어도 어딘가에는 그러한 마법세계가 숨 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며 어릴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주문이 되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나 정말 순수했구나.
9살의 나는 피아노 학원을 처음 다녔었는데 피아노보다 그 학원 안에 있던 책꽂이에 있던 책 <해리포터 시리즈>를 더 열심히 읽었다. 피아노 학원 노트에 있는 작은 딸기 그림에 색칠을 다하고도 바로 집에 가지 앉고 꼭 한두 권씩 책을 읽고 갔다. 그것이 ‘해리포터’라는 ‘마법사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영화였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100번 이상 돌려봤다. (모두 자막 버전으로 봤었는데, 영어가 공부됐다기보다 자연스레 한국말로 들려왔었다. 다시 생각해도 희한하다.) 내 상상력이 실체적으로 구현된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더 강렬하게 갈망했다. 저 세계에 가고 싶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영국에 있는 해리포터 촬영장과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다. 킹스크로스 역의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도 가고 말이다.
이제 그러한 것들은 모두 잘 만든 컴퓨터 그래픽이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였으며 한 작가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만든 창작세계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조앤. K. 롤링, 그녀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세계는 전 세계 아이들의 소망과 간절함, 꿈을 만들어냈다.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주제를 가지고 오랜 세계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책으로 번역되었을 때, 책을 아껴봤다. 한 장, 한 장, 내 유년기를 함께 했던 세계의 막을 내리는 것을 보는 게 정말 아쉬웠다. 항상 결말은 궁금했지만 끝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끝났고, 난 여전히 평범한 중학생이었고, 다시는 보지 못할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해리포터와 엠마 왓슨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루퍼트 그린트의 론 위즐리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처음 열렬히 사랑했던 작품을 떠나보내는 일은 상당히 공허했다. 그 주인공들이 성장한 것과 같이 나 역시 커버린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 동심이 딱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 그 설레던 영화 오프닝을 보고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을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이 예상은 전혀 틀렸다.
해외직구로 내가 처음 산 것은 다름 아닌 해리포터의 사운드트랙 중 하나인 ‘Hedwig’s Theme’가 연주되는 오르골이었으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인 타로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베리타세룸(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마법약)’의 이름을 홀린 듯 기억해냈고, 스핀오프 작품인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을 보고 기뻐하는, 여전히 해리포터라는 작품은 나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가장 내게 오랜 생각을 안겨줬던 주문은 세 번째 시리즈였던 '아즈카반의 죄수'에 처음 등장했던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다. 그 주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주문은 실제로 자신에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불행한 존재들인 디멘터를 물러나게 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주문을 발동시킬 수 있는 시작인 것이다. 이 부분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매번 내게 가장 강렬한 행복의 순간은 언제였는지를 물었고, 만약 그러한 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저 주문을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볼 수 있듯 사실 가장 기쁜 기억 주위에는 슬픈 기억이 있으니까. 오로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예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족들과 현장에 나갔던 적이 있다. 새해를 그곳에서 맞이하는 일이 처음이라 설레고 행복했는데, 그렇게 새해가 된 날, 그 종소리를 들으며 많이 울었다.
또 행복한 일이라는 게, 떠올려보면 어떤 구체적인 상황들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상을 받아서 기뻤던 기억, 놀이공원에 놀러 가서 즐거웠던 일, 어느 날, 좋은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과 있었던 기억들, 그중 가장 강렬한 행복의 순간이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장난처럼 이 주문을 외칠 때도 생각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지?
이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던 순간들은 그저 어느 날, 그냥 머물러 있는 것들이라 굳이 찾으려 하면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 (최근,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더 생각이 많아진다.) 실제 영화에서도 해리는 이 부분에서 고전한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일까? 해리는 제일 먼저 빗자루를 타고 퀴디치 경기(마법사 세계의 축구 경기)에서 승리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 결과는 실패.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해리가 떠올린 행복의 순간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대체 무슨 일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냥 사랑받고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고 그 주문을 성공시켰다. 행복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 그런 것들은 모호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 깊게 남겨져 있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행복하겠지. 무엇을 좋아하더라. 화창해서 자연광이 짱짱한 날에 사진 찍는 일,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일, 시외버스에 서 초콜릿 우유를 빨대로 빨아 마시는 일, 좋아하는 드라마를 챙겨보는 일, 좋아하는 가수가 새로 발표한 노래들을 듣는 일, 약간은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일,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이어 보는 일까지. 정말 하나같이 소소하고 일상의 것들이라서 행복해지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이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나는 해리포터를 사랑한다. 책이든, 영화든 읽거나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사운드트랙만 들어도 신비한 마법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로 끌고 갈 수 있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진짜 매력적인 것들은 늘 그렇다. 다시 마주했을 때, 처음 그 순간으로 시간을 돌려버린다. 다 끝나고 과거의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거 그 순간의 나는 여전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이 글을 읽은 분들께 드리는 두 가지 질문.
1. 가장 매력적인 것이라 다시 마주해도 첫 만남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있으신지?
2. ‘익스펙토 패트로눔’ 주문에 알맞은 행복의 기억을 떠올리셨는지?
+) 그리고 소개하는 시 한 편.
졸업
김사인
선생님 저는 작은 지팡이나 하나 구해서
호그와트로 갈까 해요.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서울역 플랫폼 3과 1/4번 홈에서 옛 기차를 타렴.
가방에는 장난감과 잠옷과 시집을 담고
부지런한 부엉이와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호그와트로 가거라 울지 말고
가서 마법을 배워라.
나이가 좀 많겠다만 입학이야 안 되겠니.
이곳은 모두 머글들
숨 막히는 이모와 이모부들
고시원 볕 안 드는 쪽방 뒤로
한 블록만 삐끗하면 달려드는 ‘죽음을 먹는 자들’.
그래 가거라
인자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주근깨 친구들
목이 덜렁거리지만 늘 유쾌한 유령들이 사는 곳.
빗자루 타는 법과 초급 변신술을 떼고 나면, 배고프지 않는 약초 욕 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투명망또도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그곳이라고 먹고살 걱정 없을까마는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저 흑마술을 잘 막아야 한다.
그때마다 선량한 사냥터지기 해그리드 아저씨를 생각하렴.
나도 따라가 약초밭돌보는 심술첨지라도 되고 싶구나.
머리 셋 달린 괴물의 방을 지나
현자의 돌에 닿을 때까지,
부디 건투를 빈다
불사조 기사단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