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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Dec 15. 2018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스토리의 끝은 해피엔딩이니까.

- 영화 <최악의 하루> -

“최악의 하루, 그 엔딩만큼은 해피엔딩일 거예요.”     


  나른한 오후, 할 일 없이 소파에 기대 보기 시작한 영화다. 느긋하게 카메라를 따라 서울 산책을 다 마치고 나면 영화의 엔딩이 보인다. 처음엔 예쁜 서울에 반하고, 중간엔 씁쓸했다가, 마지막엔 힘을 얻는다. 두 사람에게 최악의 하루인 그날을 엿보고 있노라면 내 엔딩 역시 해피엔딩일 거라는 위로를 받게 된다.      


(기존에 웹진에 기고했던 글을 많이 다듬었습니다. 아니 다시 쓴 것과 같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이게 무슨 뜻이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볼수록 빠져들고 ‘지금 이 영화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다.’라는 것을 느꼈다. 말 그대로 N차 관람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요즘도 종종 떠올라 영화를 쭉 보고 있노라면 내 감정을 오롯이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다.


  처음 영화의 시작을 떠올리자면 영상미는 예뻤고 여자 주인공의 상황은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고 일본인 작가는 타국에서 꿔다 놓은 빗자루 마냥 대해지고……. 그래서 사실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된 이유는 감성적인 영상미소설가와 소설 속 주인공의 만남인 것 같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본 영화의 영상미는 내내 예쁘다. 서울의 아름다움은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서촌, 남산으로 한정된 공간들의 곳곳을 조명하며 주인공들이 걸어 다니면서 생기는 사건들의 훌륭한 배경으로 만들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의 소소한 아름다움 들을 놓치고 있던 내게 어서 서울 산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 내 주위를 관찰하며 걸어야겠다 다짐했다. 스쳐가는 모든 것들의 매력을 찾아내면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영화의 스토리를 보자면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엔딩 대사를 마주했다. 그럼에도 엔딩 대사의 여운이 길게 남아있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도 뭔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하면서 평들을 읽고 있다가 어느 분의 한 줄 평에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 다가갔다’라는 문장을 보고 1시간 33분 동안의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하고 더 느낄 수 있게 됐다. 물론 이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본 관점 중에서 가장 제게 와 닿았던 관점이기에, 내게 이 영화의 답은 그렇게 내려졌다. 그 후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착착 정리를 해가면서 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전영화가 아닌지라 개인적인 해석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 영화의 가장 주요한 인물은 연극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은희’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지 않은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다.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두 사람의 하루를 분할해 보여준다. 주인공 ‘은희’와 소설가 ‘료헤이’는 ‘료헤이’가 한국에 와 길을 잃게 되어 처음 만나고 각자의 모국어인 한국어와 일본어를 서로 사용하지 않은 채,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공 ‘은희’는 소설가 ‘료헤이’에게 길을 알려주고, 짧은 만남 뒤에 서로의 하루로 향한다.     

  주인공 ‘은희’는 배우를 꿈꾸고 있으며, 현재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전에 만난 남자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꼬인 관계다. 그 시작은 바로 그녀의 거짓말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들의 어긋남의 시작이 ‘은희’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관계란 상호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관계를 이어가려는 어쩌면 이기적인 욕망들이 그 관계들의 어긋남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의 욕망을 지키는 방식이며, 그로 인해 꼬여버린 남자들 사이의 관계에 그녀는 최악의 하루를 맞이한다.     

  소설가 ‘료헤이’는 한국에 와 번역된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전혀 인기가 없는 자신의 책, 조금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온 사람들과 말은 통하지 않고, 언어가 다른 탓에 자신의 책에 대한 의견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계속해서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한다. 그러다 만난 자신의 팬이라는 한 매거진 기자를 만난다. 그 기자는 그에게 왜 그의 소설 속에 인물들에게 왜 불행을 몰아치냐고 묻고, 그들을 정말 알고 있냐고 묻는다.(그들을 이해하고 있는지와 같은 맥락의 질문과 같다.) 그러한 질문에 소설가 ‘료헤이’는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소설가 ‘료헤이’는 소설 속 인물들과 자신은 다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물음에 확답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는 아까 만났던 주인공 ‘은희’가 간다고 했던 남산으로 향한다.     



  그렇게 각각 ‘최악의 하루’를 보낸 둘은 늦은 밤 남산에서 마주한다. 둘은 반가운 듯, 짧은 영어로 이야기한다. 주인공 ‘은희’는 자신이 거짓을 말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소설가인 '료헤이'와 이야기할 때에는 영어라 거짓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은희는 일본어를 할 수 없으니 영어로만 소통이 가능하다.) 배우를 준비하는 그녀는 무대에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고 무대에 내려왔을 때는 거짓을 말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소설가 ‘료헤이’는 묻는다. 지금도 거짓이냐고,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그녀는 답한다. 영어라서 거짓을 말하기 어렵다고.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기에 은희는 거짓을 말할 수도 없다.     


  그때에 소설가 ‘료헤이’는 주인공인 ‘은희’에게 갑자기 이야기가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해피엔딩을 써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절은 눈 오는 추운 겨울, 한 여자. 두 눈 가득히 걱정을 가진 그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하지만 걱정 말아요.

이번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일 것입니다.”     



  “곤경에 처한 여자 이야기다.”라는 소설가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본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 ‘은희’가 소설가 ‘료헤이’가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영화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남자 주인공이 아닌 소설가라고 ‘료헤이’를 지칭했다. 은희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주인공이라는 말을 붙였다. 이 둘은 엄연히 같은 세계 속에서 같이 대화하고 있는 존재지만 한 사람그 세계, 그 이야기를 창작한 사람, 다른 사람은 그 창작한 세계 속에서 창작한 사건들을 버티는 주인공이다.      


  영화 속 소설처럼 '소설 속 그들을 잘 알고 있나요?'라는 기자에 말에 자기모순을 겪고 있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소설 속 불행들에게 시달린 하루를 보낸 여주인공을 만나러 소설가 ‘료헤이’는 남산을 향한 것이다. 다시 만난 그녀와 거짓 없이 소통하고 알아간다. 영어라는 공통의 언어 매개체를 통해서. 소설가인 ‘료헤이’도 자신의 모국어인 일본어로 써 내려간 소설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유창하지 않은 언어가 필요했다. 그렇게 최악의 하루를 보낸 그녀에게 이번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이러한 위로의 말은 이 영화를 보는 모두에게 해당된다. 소설가의 소설 속 주인공과 그냥 평범한 우리들이 계속 마주할 수많은 불행들의 끝이 해피엔딩이니 걱정하지 말고 길의 끝을 보라는 위로의 말.     


  여주인공의 독백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소설 속에서의 하느님은 소설을 쓴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창조주인 작가들은 어떠한 의도로 글 속 인물들에게 불행을 선사한다. 소설가 ‘료헤이’는 해피엔딩을 써주지 않는 작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글은 글일 뿐이니까. 하지만 독자는 그에게 말한다. 그 인물들을 진짜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이 맞냐고. 이에 글 속 인물 ‘은희’을 만나게 된 소설가 ‘료헤이’는 글 속 인물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하며 해피엔딩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듯 지금 우리의 삶에서 글 속 인물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신’이라고 대변되는 전지적 인물(소설 속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이 우리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결말은 해피엔딩일 것이니 수많은 불행들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생각했다.     

소설가 '료헤이' - 여주인공 '은희'

전지적 존재(신) - 우리들, 관객들


  이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어느 날 본 책에서 걷는 것이 지금 가장 아무 일도 없음을 확인하는 행위라는 문장을 보았다. 그런 평온함을 찾아 당장 서촌으로 걸어보고 싶게 만드는 위로의 영화 <최악의 하루>다.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끝이 정해진 책이라면 그 엔딩을 보고 싶다고.

  책갈피를 두고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해피엔딩이라고 믿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영화 속 기억에 남는 대사들     

1. 긴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2. 연극이란 게 무대에 있을 때는 진심이거든요. 근데 끝나고 나면 가짜고.     

3.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4.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5.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스토리의 끝은 해피엔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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