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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Dec 20. 2018

초심자의 행운을 잊지 않길.

- 책 <연금술사> -


  장편 도서를 읽게 된 시작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두 권의 책을 떠올릴 수 있다.(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외하고)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당시, 중고등학생이던 언니들의 필독도서였다. 어린 나는 언니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렇게 읽게 된 장편 도서의 시작은 첫인상이 좋았다. 첫인상이 좋았던 기억만큼 지금도 책을 좋아하며 글을 쓰는 걸 즐기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본 책을 다루고 싶었다. 파울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유명한 책이지만 꼭 다뤄야만 하는 책이 되었다.       


  책 <연금술사>는 내 인생 책들 중 하나다. 한 책을 여러 번 읽었던 첫 책이기 때문이고, 읽을 때마다 새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연금술사>는 마치 판타지 소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철학적인 책이란 걸 알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다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는 ‘산티아고의 용기’에 박수를 쳤다.      


  이제야 산티아고의 여행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신부가 되라는 아버지의 제안에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신의 의사로 ‘양치기’가 된다. 그에게 글을 읽을 줄 알면서 양치기가 되었냐는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산티아고’란 인물은 당연하고 따뜻한 현실에 머물지 않는다. 계속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떠나길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여러 번 꾼 꿈이라고 해서, 단지 그 꿈을 꿨다고 해서, 본인의 직업, 일상을 포기하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는 세상에 서툰 초심자였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산티아고의 이야기를 듣고, ‘아니, 몇 번 꾼 꿈 때문에 사막까지 왔단 말이야? 정신 나갔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일까.

  우린 모두 산티아고였던 것은 아닐까. 

    


  요즘 아이들의 꿈 중 떠오르는 직업은 크리에이터(1인 방송기획자, ex_유투버)다. 나의 초등학생 때 꿈은 의사, 과학자, 한의사 순으로 변했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의사는 드라마에서 멋있어 보였고, 과학자는 사실 둘째 언니의 꿈을 보고 따라 했다. 한때는 과학이 재밌었고, 영재교육원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지금 전공이 국어국문학, 심리학이니까... 과학은 재밌었으나 수학은 내게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의사는 꽤나 특별한 계기가 있다. 어릴 적, 발목을 심하게 삐어 절뚝거리며 어느 한의원에 갔는데, 들어갈 때는 절뚝거리던 내가 나올 때는 뚜벅뚜벅 걸어 나왔던 아주 어릴 적 흐릿한 기억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다양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던 산티아고들이다.     



  작가를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때가 시작이었다. (이제 하도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녀서 한껏 가벼워진 내 추억의 일부다. 내 주위 사람들은 지겨울 이야기다.) 중학교 때, 어느 백일장에 가면 피자빵과 USB를 준다고 해서 우리 동네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은 걸리는 곳으로 향했다. 비가 잔뜩 내리는 날이었고, 교복을 입고 있어서 스타킹에 대롱대롱 빗방울들이 매달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달려야 했다. 겨우 지각을 면하고 낯선 교실에 앉아 ‘산불’이라는 시제를 마주했을 때,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앞의 원고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속대로 받은 피자빵을 먹으며 자리에 앉아 산불을 계속 고민하다가 문득 ‘누가 이곳을 아름답다했는가’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게 곧 제목이 되었고, 내 첫 소설 아닌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이 되었다. 그 글을 쓰는 내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착각이 지금 내가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그저 어느 날, 어느 평범한 날에 심장이 뛰었다고 해서 그 순간이 특별해진 건 처음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작가는 언젠가 하고 싶은 것이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글을 써보자 했고, 지금은 글을 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경로가 있겠지만 내게 그 경로들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 타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타협했다. 지금 휴학을 한 이유도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결정할 수 없어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분야들의 현장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운 좋게 공연 계통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 맡고 있던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분야를 향해, 또 다른 현장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교대, 사범대에 다니는 내 친구들은 내게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신입생 때였다. 그때도 ‘경험’이라는 것을 모으기 위해 이리저리 일을 벌이고 다니던 때였다. 그 친구들은 시간표가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활동들 역시 교육 쪽이었기에 내게 넌 참 대학생 같다고 말해줬었다. 참 뿌듯했던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이제 임용고시를 보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느 정도 가늠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난 부러웠다. 저렇게 정할 수 있다니. 그렇게 경험을 쌓고 돌아다녔음에도 아직 정한 것이 없는 나를 보며 말이다. 아직도 1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1년 후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산티아고가 들고 다니던 표지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Yes or No’, 내가 하는 선택들의 답을 누군가 대신 내려줬으면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하하 호호하다가도 그래서 어떻게 먹고 살지라는 이슈로 넘어간다. 취업은 어렵고,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기에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또 일하러 출근하고, 여러 분야에 뛰어들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 이 매거진을 완성해나가는 순간처럼 글을 쓰는 일이다. 이런 것을 보면, 1년 후 내가 어느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퇴근 후 집에서 키보드를 뚜닥뚜닥거리며 한심한 내 문장들과 싸우고 있을지는 충분히 내다볼 수 있겠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온 우주가 그 소망을 이루게 도와준다는 그 말처럼. 우리 모두 갖고 있는 작은 꿈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소망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산티아고였고, 산티아고의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질문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직면하면 꿈속에서 그 여행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손아귀에 쥔 양 떼들을 다 포기하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니까.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 잊지 않는 것만으로, 우리는 산티아고의 여행, 자아 찾기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임에 분명하다.      


  무조건 다 놓고 떠나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산티아고가 가진 ‘초심자의 행운’이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

책 속에서   

  

1. 그렇다면 전 양치기가 되겠어요.

2.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3. 몽상가가 또 하나 왔군.

4. 세상 만물은 모두 한 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5.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네.

6.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7. 바로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8.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 문득 떠오른 시 한 편

     

군고구마 굽는 청년      
                                                                                                정호승     

청년은 기다림을 굽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쪼개 추운 드럼통에 불을 지피며
청년이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다림이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투 깃을 올리고 종종걸음 치는 밤거리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조약돌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청년이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기다림이 첫눈처럼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청년은 지금 불 위의 고구마처럼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온몸이 딱딱하고 시꺼멓게 타들어가면서도
기다림만은 노랗고 따끈따끈하게 구워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구워진다는 것은 따끈따끈해진다는 것이다
따끈따끈해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 맛있어본 적이 없었던 청년이
다 익은 군고구마를 꺼내 젓가락으로 쿡 한번 찔러보는 것은
사랑에서 기다림이 얼마나 성실하게 잘 익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p.s. 이번 글에 사용된 사진은 올해 5월 학교를 2주 빠지는 첫 일탈을 하고 떠난 이탈리아 여행사진입니다. ‘일탈’이라고 하기엔 수강신청 때부터 가장 적게 빠질 수 있는 시간표로 짰었습니다만...  다시 돌이켜봐도 가장 행복했던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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