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까지 7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by 최덕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른다. 화장실이 가깝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나도 사무실에 앉아 일할 때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급하면 일어나서 복도 끝까지 걸으면 된다. 30초면 충분하다. 그런데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화장실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이 고객용 화장실을 쓸 수 없게 하는 곳이 있었다. 직원은 직원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솔직히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 느리다.


얼마 전 한 백화점 식품관에서 판촉 프로모션을 진행할 일이 있었다. 우리 매니저를 통해 소개받은 분이 한 명 계셨다. 오십대 중반의 여성분, 영숙 여사님(가명). 오랫동안 가정에 계시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셨다.


식품관 판촉 일이 있는데 해볼 의향이 있느냐 여쭤보니,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하셨다.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꼭 일을 해야 하는 분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식품관 판촉은 체력 소모가 크다. 종일 서서 시식을 권하고, 상품을 설명하고, 정리하고. 여사님은 오랜만에 복귀한 현장이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화장실이었다.


아마 예전 기억으로 해당 백화점 식품관에서 직원 화장실까지 가려면, 후방 직원 통로로 들어가서 복도 세 개를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한 번 타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종종 걸어서 편도 7분. 왕복이면 15분이고, 일을 보고 돌아오면 거의 30분 가까이가 지나 있다.


여사님은 체력이 부담되시면서 화장실을 자주 가셔야 하는 상황이 생기셨다. 그런데 30분씩 자리를 비우게 되니, 백화점 담당자나 업체 쪽에서 볼 때 프로모션 자리에 사람이 없는 거다. 우리 회사에도 클레임이 들어왔다. "프로모션 스태프가 자리를 너무 자주 비운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여사님은 화장실을 자주 가시는 게 미안했는지 휴게시간 내에서 해결하시려고 식사를 아예 거르고 계셨다. 밥 먹는 시간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쓰셨던 거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기 너머로 안절부절 못하시는 게 느껴졌다. "실장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체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봐요. 폐 끼치는 거 아닌지…."


오히려 내가 민망했다. 일하고 싶어서 나오신 분한테, 화장실 때문에 미안해하게 만드는 현장이 문제지, 여사님이 문제가 아닌데.


"여사님, 걱정 마세요. 화장실 가시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거 때문에 밥까지 안 드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안을 하나 드렸다. 근무시간을 조금 줄이고, 체력 관리를 하시면서 무리 없이 다니시는 게 어떻겠냐고. 줄어든 시간만큼은 판매 인센티브로 조금 더 보태드리겠다고.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실장님, 저 자르시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여사님. 오래 다니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제야 여사님 목소리가 좀 풀리셨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여기서 잘리면 어디 가나 싶어서 계속 버티고 있었거든요."


여사님은 근무시간을 조정한 뒤로 안정이 되셨다. 식사도 제대로 하시게 됐고, 화장실도 눈치 보지 않고 다녀오시게 됐다. 무리하지 않으니 오히려 매장에 서 계신 시간 동안 집중력이 올라갔다.


프로모션 마지막 날, 고객사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프로모션 반응이 좋았는데, 다음 달에도 같은 분으로 넣어줄 수 있어요?" 처음에 클레임을 넣었던 그 담당자였다. 여사님이 바뀐 게 아니라, 여사님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바뀐 거다. 그걸 결국 현장이 증명했다.


나중에 여사님께 다음 달도 하실 수 있냐고 여쭤보니, 한참 만에 조용히 말씀하셨다. "실장님, 저 계속 해도 되는 거예요?" 그 목소리가 좀 오래 남았다.


화장실까지 7분. 별것 아닌 숫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7분이 어떤 사람에게는 밥을 굶게 만들고, 자리를 비웠다는 클레임을 만들고, "잘리는 거 아니냐"는 불안을 만든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현장에 나가야 보인다. 화장실 하나가 사람의 하루를 이렇게 흔들 수 있다는 걸.


사람한테 가장 기본적인 것을 기본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대단한 복지보다 먼저라고 생각한다. 앉을 수 있는 의자, 먹을 수 있는 밥, 그리고 갈 수 있는 화장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곳. 그게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현장의 시작이다.


image.png 어떤 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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