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문자 한 줄

서운함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

by 최덕호

요즘은 식당 예약 노쇼만 있는 게 아니다. 면접 노쇼, 출근 노쇼도 있다.


면접 잡아놓고 연락 없이 안 오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고, 첫 출근 당일 아침에 "죄송합니다 못 갈 것 같아요" 문자 한 줄이 오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나와서 조퇴를 하거나, 미안한 마음에 대신 나갈 사람이라도 추천해줬는데. 지금은 문자 메시지 한 줄이면 끝이다.


채용 관리를 하면서 이 문자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서운함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 말, 서울 한복판의 한 백화점에서 꽤 큰 행사가 있었다. 여러 브랜드가 모이는 연합 팝업스토어라 인원이 많이 필요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현장 매니저가 추천한 인원을 빠르게 채용했다. 그중 한 명이 서른 초반의 여성 스태프, 민지(가명)님이였다.


첫날, 민지 님은 출근했다. 그런데 브랜드 연합 행사다 보니 현장이 정신이 없었다. 매장 구성도 복잡하고 알아야 할 브랜드도 여러 개인데, 우리가 제대로 된 사전 가이드를 해줄 여유가 없었다. 매니저 추천이니 어련히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나도 다른 행사 준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날 늦은 저녁, 문자가 왔다. 늦은 저녁에 오는 문자는 대체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저 내일부터 못 나갑니다. 잘하는 사람 구하세요."


딱 한 줄이었다.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오전조 오픈 시간이 됐는데 민지 님이 없었다. 행사장 오픈을 못 하고 있으니 백화점 담당자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나와 담당 매니저가 직접 나가서 매장을 열었다. 급하게 대체 인력을 수소문해서 넣었다.


그런데 이 분도 이틀 하고 나서 "못 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내더니, 근무 중간에 나가버렸다.


행사 진행은 엉망이 됐다. 결국 관리자들과 매니저들이 총출동해서 가까스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정리하고 나니 밤 열 시가 넘었다. 다들 지쳐 있었다.


일이 수습된 뒤,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민지라는 분 탓을 하기는 쉬웠다. 책임감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그렇다, 고 말하면 속은 편하다. 그런데 꼼꼼하게 상황을 돌아보니, 답은 다른 데 있었다.


해당 행사는 브랜드 연합 스토어라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경력자들도 첫날은 헤매는 구조였다. 그런 자리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가이드해주지도 않고 초보 인력을 넣었다. 이건 민지 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


문자 한 줄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자 뒤에 있었을 그 분의 하루를 생각해봤다. 아무도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현장에서, 주변은 전부 능숙한 경력자들이고, 자기만 우왕좌왕하는 상황. 그 하루가 얼마나 막막했을지.


"잘하는 사람 구하세요." 그 말은 무책임이 아니라, 자기도 잘하고 싶었다는 뜻이었을 수 있다.


일 주일쯤 뒤, 급여 정산 안내를 하면서 민지 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급여 내용과 함께, 한 줄을 더 넣었다.

"민지 님, 그때 제대로 가이드를 못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힘드셨을 텐데, 하루라도 나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루 뒤,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그때 문자 보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이렇게 연락 주실 줄 몰랐어요. 저도 그냥 나가버린 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보내주신 문자 보고 좀 놓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는 제대로 해보고 싶네요."


읽고 나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쪽도 마음이 안 좋았구나.


퇴사 문자 한 줄을 받으면, 첫 반응은 대부분 서운함이다. 그런데 서운한 마음으로 멈추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문자 뒤에 있는 원인을 봐야 다음에 달라진다.


사전 가이드는 충분했는지, 첫날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 사람의 수준에 맞는 자리였는지. 따져보면, 떠난 사람보다 보낸 쪽의 문제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떠난 사람에게도 마지막 한마디는 남기는 게 좋다. 급여 안내든, 짧은 인사든.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상대방 마음에 남아 있던 짐 하나를 내려놓게 해줄 수 있다. 서로간의 짧은 인연이지만 인사로 마무리하면 양쪽 다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사람은 떠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보내는 방식도 중요하다. 그래야 다시 올 수 있는 문이 남는다.


image.png 행사장에서 스테프들은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누구나 슈퍼맨이 되기는 어렵지만.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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