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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Sep 02. 2020

무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봐.

그냥 그렇게

우리 아빠는 경비원. 일을 시작한 지는 일 년이 채 안되었다. 처음엔 가족들의 걱정이 컸다. 해보지 않은 낯선 일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가족 일원 중 하나가 쉰다는 것이 생각 못해볼 일이었고 아빠는 자연스레 일을 시작했다.


사업을 하시던 아빠가 아닌 경비원의 아빠는 좀 더 생각이 자주 났다. 추운 날에는 난방 기기는 잘 돌아가는지 문자로, 전화로 물어보았다. 더운 날에 물은 많이 드셨는지, 식사는 제 때 챙겨 먹었는지의 것들. 최근에는 경비원 폭행 사건들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생각이 많이 났다. 역시 일을 하고 있던 엄마는 집에 있을 때에는 틈틈이 도시락을 싸주었다. 나가서 세 끼를 모두 챙겨 먹어야 했기에 아빠의 도시락 가방은 항상 가득 차 있었다. 바빴던 일 년이었다.





나는 내 어림짐작으로 아빠를 위한 물건들을 사드렸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조금이라도 필요해 보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서 갖다 드렸다. 허나 아빠가 실제로 사용한 확률은 50%도 안되었다. 밤에 순찰하는 아빠를 위한 호신봉은 텔레비전 옆 장식품이 돼버렸으니.

목걸이형 선풍기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 버틸만했던 초여름 무렵, 더위를 무진장 타는 아빠를 위해 목걸이 선풍기를 사 왔다. 엄마 표현으로는 여름되면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곤 했던 것이다. "아빠! 순찰 돌 때 이거 쓰면서 해, 바람 부니까 좀 나을 거야."

아빠는 보곤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걸 어떻게 쓰고 다니나. 허허허


비싼 가격은 아니었기에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하고 집에 두었다.


그나저나 미세먼지 많고 전염병이 돌고 역대급 장마가 찾아오고, 혼란한 2020년이다. 그러고 장마가 끝났다. 기나긴 역대급 장마 뒤에는 규모의  3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았고 아빠는 내가 줬던 선풍기가 생각이 났나 보다. 덥고 습했던 지난주 어느 날, 아빠는 식탁 위에 빈 박스만 남겨두고 일하러 나갔다.





내심 뿌듯했다. 아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었고 쓸모 있게 쓸 테니 말이다. 별 거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덜 더워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회사에서 웃는 얼굴로 사람들과 즐겁게 일했다. 그러고 퇴근하고 나서 엘리베이터에서 아빠를 만났다. 선풍기 어땠어라고 묻기도 전에 아빠는 지난번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쓰고 나갔는데 한 소리 들었다. 보기 좀 그렇다고 하더라.


갑자기 덜컹하고 떨어지는 느낌. 유니폼 위에 걸친 선풍기가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괜히 안 좋은 소리 듣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제 더 더워질 여름에 원망스러움이 밀려왔다. 아빠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한낮의 공포를 나는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음장처럼 부는 겨울바람의 매서움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경비원을 대할 때 쳐다보며 괜히 조심스레 지켜보게 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한테는 에이 뭐 그랬어? 어쩔 수 없네 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적지 않은 분을 삼켰다. '그거 좀 뭐가 대수라고?' 근데 뭐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다. 그러다가 나는 또 쇼핑몰을 찾았다. 아이스 조끼가 괜찮아 보인다. 녹아서 옷이 많이 젖진 않으려나, 그렇게 나는 계속 들여놓을 것이다. 머리 큰 딸이 애교는 못 부려도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얼토당토않은 물건을 보며 아빠는 또 허허하고 웃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호신봉을 아빠에게 보여줬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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