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도 침대는 좋은 거, 큰 거를 사야 한다던 친구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침대는 고스란히 신혼집으로 가게 되었고 쥐도 새도 모르게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경위를 듣게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결혼할 사람 이야기 좀 해봐."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아직 별로 안 친해..."
"아니 그렇게 모든 연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던 네가?"
우리가 매번 만날 때마다 그의 전쟁 같은 다툼의 일화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한 소리는 "그만 좀 해라."였다.
그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사랑'의 '열정'이라고 믿었던 때,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가만 둘 수 없는 감정의 회오라기 중심에 항상 있었다.
중간중간 통화를 할 때, 톡을 주고받을 때의 친구는 마치 딴 사람처럼 존댓말을 써가며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 너무 적응이 안 되는 거 알지? 그런데 그분도 대단하다 너에게서 이런 모습을 이끌어 내다니... "
친구는 자기도 이렇게 변한 게 놀랍다며 머쓱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약간 거리가 있는 사이도 좋은 거 같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뭔가 조심스럽지만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이라는 게 느껴지거든."
"네. 그럼 앞으로도 거리두기 잘하시고요. 행복하길 바라."
옛 남자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쪽에서 아는 척을 하려고 하는 찰나, "누구세요?"라는 나의 물음에 "뭐야 왜 이래?"라는 능청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차라리 모르는 사람 할래. 처음 보는 택시 아저씨께도 이렇게 인사하면서, 식당 아주머니께도 다정한 네가 소중하다는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대답해봐."
마치 "풀떼기도 사랑하고 염소 새끼도 사랑하면서 나는 왜 안 사랑해!"라고 말하는 '나의 아저씨'의 정희처럼 한참 동안 울분을 토한 것 같다.
꿈이었다.
소중하다면서...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는 함부로 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함부로: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주로 제일 가까운 가족들, 연인, 친구들이 대상이다. 피곤하다면서 무심코 뱉은 짜증이, 가까워서 낸 신경질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어줄 만한 사람들 같아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된다. 결코 그러라고 있는 존재는 아닐 텐데 말이다.
고객과 통화할 때의 상냥함으로, 길거리에 낯선 고양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미소로, 택배 벨 소리를 듣고 뛰어나갈 때의 두근거림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새해의 목표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