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분위기, '이쯤이면 고생했어' 라며 살짝 늘어져 있던 몸과 마음이 단지 해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하룻밤 사이 재정비하려다 보니 힘에 부쳤다. 어제까지 늦잠을 자던 습관들이 오늘은 새해이기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야 하는 거 하며, 운동도 열심히 하기로 계획했기 때문에 온갖 찌푸린 얼굴로 집을 나섰지만 이 모든 걸 작심삼일 만에 끝낼 순 없었다.
굳게 맺은 나와의 언약들은 점점 교묘히 변칙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1년에 책 100권씩 읽으면 인생이 변한대!' 그런 경험은 놓칠 수 없었다. 새해니깐...'
한 달에 책 10권 읽기가 계획에 추가되었다.
년 초부터 미간의 주름이 펴질 날이 없을 정도로 독서는 힘들었다. 좋은 책을 음미해서가 아니라 조금만 내용이 난해하거나 재미가 없는 책들을 중간에 반납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초초해서... 결국 마지막 며칠 남지 않은 1월 동안 고른 책들은 얇고, 그림과 사진이 아주 많았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1월을 근근이 보내고 녹초가 되었는데 달력은 무심하게 2월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왔다. 2월은 날도 짧은데 다시 책 10권을 읽으려니 볼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2월의 첫 주, 구정 연휴로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시 한번 새해를 맞이하는 고유의 명절. 이미 시작했는데 다시 시작하란다. '왜 새해를 굳이 두 번씩이나 보내게 했을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건가? 만약 진정 그런 의미였다면 역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 대단해. 그래.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그렇게 쉽냐고. 나 같이 실행과 실패를 반복하고 좌절해 있을 때쯤 새롭게 다시 해보라고 넌지시 넣어둔 거 아냐? 그렇지?'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느낀 동질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해석이었다.
앞으로 할만한 것,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 수정 가능한 것들에 대해 대대적인 작업에 돌입하였다. 새벽 4시 30분 기상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막상 일어나도 9시쯤에 이미 지쳐서 이후의 일상이 엉망이 되었다. 책들은 한 권을 읽더라도 나중에 어딜 가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줄거리는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성의껏 읽기, 10권을 읽지 못하더라도 의기소침해하지 말 것. 운동은 조금 더 횟수를 늘리거나 시간을 늘려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화를 신을 때까 힘들지 막상 신고 나면 하게 되어있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왜 새 학기의 시작이 3월인지,
왜 삼세번의 기회를 주는 것인지
왜 스타트 전에 3,2,1을 외치는지,
험난한 1월을 지나고 이제 조금 나란 사람을 알게 된 2월의 끝에서 어렴풋이 2월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